[신인섭 칼럼] 와인과 국기와 종교

[신인섭 칼럼] 와인과 국기와 종교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10.2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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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와인 (출처 decanter)
포트와인 (출처 decanter)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 Wine, Woman and Dance란 노래는 있지만, 와인과 국기와 종교는 1930년대 초 조선일보와 조선총독부 국문 기관지이던 매일신보(每日申報) 광고에 나타난다. 한국에 언제부터 와인이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 나라 신문에 와인 광고가 등장하는 것은 1920년대 말 무렵부터이다. 처음에는 여성을 그린 작은 광고였는데, 시리즈로 게재됐다. 그리고 30년대에 접어들면서 남성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와인은 와인인데 달콤하고 알콜 도수가 꽤 놀은 포르투갈의 포트와인이 먼저 선을 보였다. 포르투갈 항구 포르투를 통해 17세기 후반부터 세계 각처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이름이 포르투(포트)와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해방 전 한국에서는 와인이라 하면 달콤한 술인 포트와인이 와인의 대명사로 되어 있었다 한다. 그래서 국산 와인이 나와 판매할 무렵에는 진짜 와인의 맛은 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데 퍽 고생했다는 말도 있다.

1930년대 한국에서 팔던 포트와인 병에는 빨간 구슬 모양이 있었던 듯 일본 사람들은 적옥(赤玉), 일본말로 “아까다마”라 불렀다. 일본 국기는 빨간 동그라미이므로 “집집마다 그린 기(旗) 집마다 아까다마 포트와인”이라는 헤드라인이 등장한다. 그 아래에 있는 광고는 멋들어진 카피이다. “이제는 또 한 살씩 나이를 더 먹었네나. 아니 나는 아까다마 포트와인의 덕택으로 또 한 살젊어졌다네”이다. 담배와 재떨이가 놓인 것은 1930년대 시대상일 터이고.

조선일보 1930년 1월 19일자에 실린 이 광고는 제품 브랜드와 일본국기를 적절하게 배합했다
조선일보 1월 15일자 이 광고는 만화체이면서 연초임을 고려한 멋진 카피가 있다
조선일보 1월 15일자 이 광고는 만화체이면서 연초임을 고려한 멋진 카피가 있다

아래에 있는 광고 카피는 더욱 멋있다. “밋는 자(者)는 모다 구(救)함을 받으리라. 여러분 아까다마(赤玉) 포트와인을 잡수십시오“이다. 등불을 든 여성, 외치는 경찰관, 북치는 남성.

매일신보 1930년 5월 18일자에 실린 이 광고는 기독교의 선교활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하다
매일신보 1930년 5월 18일자에 실린 이 광고는 기독교의 선교활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하다

1930년 5월 18일자 매일신보에 게재되었는데 자칫 연말 구세군의 남비가 연상된다. 물론 1930년대의 기독교인도 이 정도의 유머는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1970년대 후반 OB맥주가 정부 시책에 따라 마주앙(Majuang) 브랜드를 내놓았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마주앙은 천주교 미사주를 개발하며 국제 무대에 어엿이 등장,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가 되었다. 와인의 맛이 달콤하다는 포르투갈 포트와인이 심었던 의식은 이제 사라졌다.

마주앙 미사주 (출처 한국일보)
마주앙 미사주 (출처 한국일보)

 

신인섭 (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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