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손가락에 맞는 구멍이다.
금이라는 재료가 아니라, 손가락이 지나가는 그 빈 공간. 즉, 본질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는 이 역설은 광고판에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개념이다. 아무리 반짝이는 크리에이티브도, 아무리 공을 들인 브랜드도 결국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크리에이티브를 시작할 때마다 제일 먼저 물어야 할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게 고객에게 무슨 상관이야?"이다. 본질은 언제나, 거기서부터다.
광고는 제품이 아니라 마음을 판다. 모든 설득은 상대방의 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이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느냐이다. 이건 연애와도 비슷하다. 썸을 타고, 데이트를 하고, 서로를 탐색하던 끝에서 남는 질문은 언제나 하나다. "이 사람이랑 평생을 함께하면 내가 행복할까?"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넘나들며 마침내 고객이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질문, "이 브랜드와 함께하면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될까?" 그게 본질이다.
좋은 브랜드는 늘 고객의 자아에 말을 건다. 나의 가치, 나의 정체성, 나의 행복. 나의 해방. 결국 모든 소비는 자기 정체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행위다. 우리는 커피 한 잔, 셔츠 하나, 향수 한 방울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고 싶어 한다. 광고는 그 말에 답하는 일이다. 단지 무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잘 들어주는 것. 그런 점에서 크리에이티브는 고객의 자기 서사에 편입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만든 한 줄의 카피가 누군가의 '셀프 아이덴티티'가 되는 순간, 그 광고는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본질을 언제나 캠페인의 첫 페이지이자 마지막 페이지로 삼는다. 아이디어 회의가 산으로 가고, 기획의도가 흔들릴 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그 한 문장. "결국 우리는 이걸 왜 하지?" 그 질문 앞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캠페인이다. 본질은 가장 어려운 문제이자, 가장 쉬운 정답이다. 그것은 고객의 마음 한가운데 있는 질문이며, 광고인이 매일 되뇌어야 하는 자기 점검이다.
설득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 나의 감정, 나의 욕망, 나의 행복. 우리는 그 ‘나’로부터 출발해, 누군가의 ‘그래서요?’를 건너야 하고, 그 ‘나’로 돌아와 ‘그래서, 이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는 여정을 완성해야 한다. 광고란 결국 ‘나’를 위해 존재하는 타인의 이야기다. 그래서 본질을 잊는 순간, 광고는 멋진 겉치레가 된다. 본질은 절대반지다. 정답은 언제나 빈 구멍 안에 있다.
하인즈 베커 Heinz Becker
30년 가까이 전 세계 광고회사를 떠돌며 Copy Writer, Creative Director, ECD, CCO로 살았다. 지휘한 캠페인 수백개, 성공한 캠페인 수십개, 쓴 책 3권, 영화가 된 책이 하나 있다. 2024년 자발적 은퇴 후, 브런치와 Medium에 한글과 영어로 다양한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가끔은 강의와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Cosmopolitan. Writer. Advertising Creative Director. Created hundreds of advertising campaigns and written three books. One of them was made into a 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