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84년 전, 8월 10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호외

[신인섭 칼럼] 84년 전, 8월 10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호외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08.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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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10일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호외가 2000만 조선 동포의 가슴을 울린 날이었다. 이 날 두 신문의 호외 헤드라인을 한문과 한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待望 世界 마라손 制覇 完成 (대망의 세계 마라손 제패 완성)

朝鮮 男兒 意氣 衝天! (조선 남아 의기 충천!)

孫君 1着, 南君 3着 (손군 1착, 남군 3착)

30個國 56名 出戰 選手戰 (30개국 56명 출전 선수전)

超人的 新記錄 作成 (초인적 신기록 작성)

조선일보 1936년 8월 10일 호외
조선일보 1936년 8월 10일 호외

待望의 올림픽 마라손 (대망의 올림픽 마라손)

世界의 視聽 總集中裡 (세계의 시청 총집중리)

堂堂 孫基禎君 優勝 (당당 손기정군 우승)

南君도 3着 堂堂 入賞으로 (남군도 3착 당당 입상으로)

동아일보 1936년 8월 1일 호외
동아일보 1936년 8월 1일 호외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조선의 두 선수 손기정과 남승룡이 각각 1등과 3등으로 입상한 소식이 들어왔다. 우승 호외를 실은 뒤, 8월 12일 동아일보에는 “어서 오라 너 조선(朝鮮)의 두 아들이여 너의를 맞기에 고토(故土)는 용소슴친다”는 헤드라인의 두 페이지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 1936년 8월 12일 보도
동아일보 1936년 8월 12일 보도

극작가 서항석(徐恒錫)은 “손, 남 양군 승전사(孫, 南兩君勝戰詞)라는 시를 썼다. 첫 절은 다음과 같다.

지화자 조흘시고 아겻고나 아겻고나 지화자 즈흘시고 이겻고나 이겻고나

형아 아으아 이천만 다 나와서 兄아 아으아 二千萬 다 나와서

승전고 두라둥 차며 어깨겻고 춤추자... 勝戰鼓 두리둥 치며 어깨겻고 춤추자...

서항석의 헌시
서항석의 헌시

수 많은 축하 광고가 신문에 게재되었다. 그 가운데는 동화약품(同和藥品)의 활명수(活命水)와 유한양행(柳韓洋行) 네오토닉 광고도 있고 두 일본회사의 광고도 있었다. 두 신문의 기사 어디를 보아도 일본이란 말은 없고 (1936년 한국은 일본 식민지였다) 모두 조선이었다.

축하광고
축하광고

그런데 곧 8월 13일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에는 손기정의 유니폼에서 일장기가 지워진 사진에 게재되었고, 이 일은 “일장기 말소사건(日章旗 抹消 事件)”으로 비화해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는 무기정간을 당했다. 이 사건의 시작은 동아일보였으며 동아일보는 1936년 이 달 29일에서 1937년 6월 2일까지 9개월 5일간 햇수로 2년에 걸쳐 신문을 발행하지 못했다. 조선중앙일보는 끝내 폐간했고 동아일보는 재생했다.

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의 일장기 말소 기사 및 일장기가 지워진 손기정 선수 사진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의 일장기 말소 기사 및 일장기가 지워진 손기정 선수 사진

일장기 말소 사건 전후의 동아일보

장기적인 무기정간은 동아일보 경영에 심한 타격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발행하던 주요 조선어와 일본어 신문의 광고량을 행수(行數)로 조사 발표하던 일본전보통신사(日本電報通信社. 현재는 電通. Dentsu)의 자료에 따르면 동아일보의 1935년 광고 행수는 204만 2천행이었으나 일장기 말소사건이 있은 1936년과 1937년은 각각 169만행 및 77만 2천행으로 격감했다. 결산이 10월 1일에서 이듬해 9월 30일 기간이던 동아일보 사사(社史) 1권(1975년)의 “수익구성추이표(收益構成推移表)”에 의하면 1937년 (1936년 10월 1일 ~ 1937년 9월 30일) 총수입은 255,219엔으로 전기 615,708엔 대비 360,489엔 즉 60%에 가까운 수입이 감소했다. 55,924부이던 신문 발행 부수는 31,666부, 43%나 줄었고 광고 수입은 277,715엔에서 73,948엔으로 83%나 폭락했다.

해방 전 동아일보 광고량. 1935-1940. 일본전보통신사 신문총람(신인섭,서범석. 한국광고사. 2011. 나남. 108 페이지에서 재인용)
신문 광고를 행수로 발표한 일본전보통신사의 “신문총람(新聞總覽)” 1926년 표지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다름 아닌 판매부수와 광고수입의 급격한 감소의 경이적인 복구였다. 정간이 해제된 1년 후에는 정간 전의 55,783부로 복구되었고 광고 수입 역시 279,514엔으로 일장기 말소 사건 이전 수준을 약간 초과했다. 이 놀라운 복구에는 말할 것도 없이 동아일보 사원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조선인들이 일장기 말소라는 사건을 일으킨 조선 민족의 신문에 대한 열렬한 지지의 결과라고 보아 잘못이 없을 것이다.

금년으로 창간 100년을 맞이한 두 신문이 여전히 한국 신문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한국ABC협회의 신문 발행부수 공사보고서에 나타나며 두 신문에 대한 국민의 지지 척도를 반영하고 있다.

84년 전 24세 동갑의 조선 청년 손기정과 남승룡이 베를린에서 이룬 놀라운 마라톤 기록과 그 승리를 호외로 다룬 조선의 두 신문은 “조선 남아 세계 마라손 제패의 날”을 전했고, 2000만 피압박 조선 민족의 횃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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