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말 실수, 그림 실수 광고로 당한 수난

[신인섭 칼럼] 말 실수, 그림 실수 광고로 당한 수난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1.09.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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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한 세상 살다 보면 실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광고에 쓴 말 때문에 수난을 겪은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아야 된다. 왜? 우선 광고를 쓰는 사람은 카피라이터이다. 소설가, 시인은 아니지만 말로 밥벌이를 하는 말 전문가이다. 특히 광고의 헤드라인은 광고비의 80%가 소요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리고 광고의 본문인 보디 카피(Body Copy)는 헤드라인으로 끌어 드린 손님을 설득해 제품을 파는 구실을 한다. 물론 그림이나 사진, 소리, 영상, 움직임이 도움을 받는다. 설득의 힘은 경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1979년 12월에 서울에서 발행하는 모든 종합 일간지에는 반 페이지 크기의 당시 금성사(엘지 전자) 백조 세탁기 광고가 실렸다. 당시 유명한 오지명과 오미연이 한 쌍으로 나온 광고이니 일단 독자의 눈길을 끌기에는 안성맞춤. 광고캠페인의 주제는 애처지수(愛妻指數) 100점. 일부러 한자를 사용했을 것이다. 이 캠페인은 TV에도 방송되었다. 그런데 TV 광고에는 부엌 일을 도와주면 애처지수는 00점, 게다가 무엇을 도와주면 00점, 그리고 백조 세탁기를 사 주면 애처지수는 100점이 된다는 카피(말)가 있었다.

TV 광고가 나가고 나서 얼마 이따 전화가 왔다. 광고 책임자를 바꾸라는 말에 전화를 받았더니 당장 그 광고를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돈이 없어 세탁기를 사주지 못하면 영영 애처지수는 100점이 못되느냐는 것이었다. 전화를 걸어 온 곳은 YWCA였다. 화가 치밀 듯한 말씨에 어이 없었지만 사과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불문율이 있었다. "절대로 Y(YWCA)와는 다투지 말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재난은 <애처지수>로 호통을 받기 6년 전 1973년 내가 호남정유(GS 칼텍스)에서 광고/홍보 책임을 맡고 있을 때였다. 엔진 오일인 칼텍스 화이브스타 모터오일이란 긴 이름의 제품이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모터오일이었다. 20여 국가의 깃발 그림이 있는 멋진 광고였다. 신문 광고가 나간 지 며칠 지나자, 중년 남성으로부터 광고 책임자를 바꾸라는 "호통 전화"가 왔다. 성스러운 태극기를 모터오일 팔아먹는데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국기 모독"라는 말이었다. 어이 없는 말이라 화가 났지만,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국기를 이용해서 광고를 한다는 말과 함께 그런 광고 실례를 보여 드릴 터이니 시간을 내 주시면 고맙겠다는 말로 전화를 끝냈다.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말은 간단하지만 작은 재난이었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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