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감수성의 뼈대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감수성의 뼈대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1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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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명의 학생과 한학기동안 달려온 ‘융복합미디어와 대중문화’ 강의는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학생들은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고 했다. 그들에게 산울림과 들국화와 나훈아의 노래가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인지 아니면 형식만 갈아끼운 모사품이였는지 물었다. 혁신은 용기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사랑’이었다. 서정주의 영적 사랑과 기형도의 갇혀버린 사랑을 읽으며 유치환의 행복한 사랑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 김태용 감독의 ‘만추’와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며 사랑은 홀로 서는 성장이고 말없는 헌신이며 소통을 위한 기다림이고 닿지못한 인연임을 말했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에선 절망을 끊어내는 믿음과 신뢰로 바뀌고, 발터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로 넘어와선 역사의 비극으로 남은 게르만의 광기로 변질됐다. 반지(가짜사랑)와 수갑(진짜사랑)의 역설적 은유처럼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가 바닷속으로 들어간 것은 함께 할 결심이니 사랑이란 만남과 이별의 부조리라는 견해도 있었다. 누군가 상처는 타인에게로 가는 통로라고 덧붙였다. 사랑이지만 모두 다른 사랑이다. 문화 콘텐츠의 스토리텔러는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고 접목시켜 다시 차이를 만들어낼 감수성의 소유자다. 

Education(교육)의 어원은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끄집어낸다’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그러니 선생의 책무는 지식의 전파가 아니다. 그들이 지닌 내면의 그릇,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다. 기형도의 시 ‘소리의 뼈’를 보자.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쨋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엇다.(부분)‘  감수성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형체를 본다. 순간의 의미를 알아채고 새롭게 연결한다. 

감수성의 특징은 세가지다. 첫째는 현재성이다. 오늘의 사건에서 오늘의 아이디어를 구한다. 먼지 쌓인 책이 아니라 거리의 사건에서 새로운 관점을 찾는다. 둘째는 능동성이다. 인문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오감이 느끼는 실제적 경험을 중시한다. 여행을 통해 감각 기관의 촉을 연마하고 발동한다. 세째는 즉흥성이다. 재즈의 잼연주를 보라. 사고의 유연함이 보장된 무정형의 형식은 창조적 스토리의 원천이다. 로봇은 계산하지만 창조하지 못한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감탄하고 낙담하는 감각과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감수적 인간은 소유의 갈망보다 자신의 세계가 나아지도록 애쓴다. 나영석과 김태호는 시청율과 싸우지 않는다. 자신의 감수성과 싸운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리스닝 마인드 마케팅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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