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황금 낙하산이 내려옵니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황금 낙하산이 내려옵니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9.0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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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에이지 (ⓒ 위키피디아)
윌리엄 에이지 (ⓒ 위키피디아)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자동차 부품 제조 회사로 유명했던 벤딕스(Bendix)의 전성기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였다. 그 주역은 1972년에 벤딕스에 합류하여 1976년에 38세의 나이로 CEO가 된 윌리엄 에이지(William Agee)였다. 1970년대 세계 경제를 좌우한 건,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가격을 올리며 시작된 석유 쇼크였다. 중동 산유국들을 빼고는 침체된 1970년대에 대부분의 경쟁사들이 허덕이고 있을 때, 그가 CEO로 있는 벤딕스는 매년 수십 퍼센트 성장을 기록했다. 2차 석유 쇼크가 끝난 직후인 1981년에는 전년 대비 성장률 136%에 매출이 44억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보수적인 자동차 업계의 분위기를 함께 해서인지, 자동차 부품 제조업계는 제조업 중에서도 아주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했다. 에이지는 복장을 비즈니스 캐주얼로 자유롭게 하고, 임원들에게 할당해 주었던 주차 특권도 없애는 등 눈에 띄는 행보로, 벤딕스라는 그가 맡은 기업 규모보다 훨씬 각광받던 스타 경영인이었다.

윌리엄 에이지가 1982년에 다른 기업을 적대적으로 매수하여 합병하려고 시도했다. 대상 기업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 기업에 되려 벤딕스가 인수되는 결말을 맞았다. 인수 후에 CEO직에서 물러나면서 윌리엄 에이지는 410만 달러의 소위 ‘황금 낙하산 (Golden parachute)’ 퇴직 수당을 받았다. 해임되며 거액을 받는다는 사실을 언론이 꼬집었고, 대중들이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 여론 흐름을 타고 1984년에 미국 의회는 급여의 3배를 초과하는 황금 낙하산에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법을 도입했다. 그런데 이 법이 발효되면서 오히려 황금 낙하산 사례가 늘어났다.

1987년까지 미국 1,000대 기업 중 41% 정도에서 발효되었던 이 황금 낙하산 퇴직 수당이 1999년에 이르러서는 70% 이상이 황금 낙하산 제도를 도입했다. 퇴직 수당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몰랐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CEO들은 계약서에 대놓고 퇴직 수당의 지급을 요구하는 조항을 넣었다. 그리고 급여와 비슷한 수준의 황금 낙하산을 주던 기업들은 퇴직 수당을 법이 허용하는 세율 직전인 거의 3배 수준으로까지 올렸다.

비슷하게 1993년에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경영진 연봉 보수가 100만 달러가 넘는 경우 ‘성과 관련’ 부분을 제외하고,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보수 규제 발언으로 모든 보수 구조가 경영자들에게 더욱 유리하게 천편일률로 되었다. 연봉은 제한되었지만  각종 수당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습게도 고소득자에게 친화적인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발의한 100만 달러를 초과하는 모든 형태의 급여와 수당으로 대상 폭을 넓힌 법령이 실제 규제에는 큰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도 우회할 방법을 개발할 것이다.

성문화한 조치만으로 모든 상황을 방어할 수는 없다. 열 포졸이 도둑 하나 못 잡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속담은 포졸을 열로 늘이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간과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어느 유아원에서 일정 시간까지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는 지각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한 이후에 벌어졌던 상황은 아주 유명한 사례이다. 그 조치 이후에 지각하는 부모들이 늘었다고 한다. 벌금을 냄으로써 부모들은 지각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각에 따른 죄책감이 덜어졌다.

골초였던 미국 남성이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담배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남자의 결심을 칭찬하면서 여자가 그가 피는 담배 한 개비마다 10달러를 자신에게 벌금으로 주어야 한다고 했다. 흡연을 줄이려는 남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말이었는데, 남자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 그 남자가 100달러 지폐를 여자에게 건네고는 말했다. “담배 반 갑이 남았는데, 이건 마음 놓고 피울게.” 워낙 체인스모커로 담배를 참으며 힘들어하던 차에, 유아원의 부모들처럼 돈을 내니까 담배를 피워도 괜찮다는 자기만의 편리한 합리화의 길을 찾은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이렇게 의도와 전혀 다른, 어떤 때는 완전 반전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황금 낙하산을 막으려던 보도와 조치들이 오히려 퇴직이라는 비행기 문을 열고 나오는 경쟁자들마다 황금 낙하산을 장착하고 펴는 결과를 가져온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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