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Chinese New Year, Lunar New Year, 그리고 "설날"?

[신인섭 칼럼] Chinese New Year, Lunar New Year, 그리고 "설날"?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3.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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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출처 인스타그램)
다니엘 (출처 인스타그램)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지난 1월 30일 CNN 보도가 재미있다. K-Pop 가수 뉴진스의 다니엘 마쉬(Danielle Marsh)의 <수난> 이야기이다. 17세 여성이고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 2중 국적이며 한국 이름은 모지혜(牟智慧), 함평 모씨란다. 데뷔는 2022년 8월.

지난주 다니엘이 온라인 팬에게 Chinese New Year에 무얼 하느냐 물었다. 영어로 한 말이었다. 이 질문을 하고 난 이틀 뒤에 그녀는 ‘엄청나게’ 사과하고 앞으로는 “말조심하겠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상심한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을까?

다니엘이 한 영어 낱말 하나 때문이었다. 즉 “Chinese New Year"의 ”Chinese"란 낱말이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왜 굳이 “중국의 새해”라 하느냐는 비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무엇이라 해야 하느냐. Lunar New Year 즉 “음력 새해”라고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설날은 한국 사람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명절로 지키는 날이 되었다. 고유의 의식, 제사, 풍습이 있고 음식도 다양한데 굳이 Chinese New Year라 해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 Lunar New Year(이하 음력 새해) 주장자들의 이야기이다. 세계에는 각종 단체나 조직, 기관들이 있는데, 예컨대 미국의 AP 통신(Associated Press)은 글자체, 정관사(the)의 사용 따위를 정해 놓은 지침서라 할 스타일북(AP Stylebook)이 있어서 여러 언론사에서 이 자료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AP는 “Chinese”가 아니라 “Lunar”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Lunar New Year"를 주장하는 측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여러 비평가는 설날의 기원은 중국의 태음태양력(lunisolar) 달력에서 시작되었으며 아시아 지역 여러 나라에 오래된 이 중국의 영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즉 연도는 서양 달력을 따르되 전통적인 관습은 음력을 따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올해 설날은 양력 2023년이지만, 설날은 음력을 기준으로 해서 1월 22일인 것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Chinese 인가 Lunar 인가를 놓고 팽팽한 찬반의 의견이 갈라지는 가운데 특히 여러 기업과 고위 공직자는 살얼음판 걷듯 어느 쪽도 건드리지 않고 명절을 맞으려고 조심은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없지 않다.

최근에 눈길을 끈 사례가 있는데 저명한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은 전통 한국 음악 공연을 앞두고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 1월 12일에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신비한 공연을 보시면서 한국의 음력 새해(Korean Lunar New Year)를 축하하십시오.”

그러자 잔뜩 화가 난 트위터 메시지의 집중 공격이 뒤따랐다. 그중에는 “그것은 중국 신년(Chinese New Year)이라고 부릅니다”라는 회신도 있었다. 대영박물관의 트윗은 중단되었고, 축제 첫날인 1월 22일에는 중국 그림을 배경으로 한 “Happy New Year"와 함께 중국어로 환영 인사가 이어졌다.

런던 중국 새해 축제 (출처 visitlondon.com)
런던 중국 새해 축제 (출처 visitlondon.com)

음력 새해는 대개 15일간 명절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마도 90대 가까운 아니 든 한국 남성은 구정에 연을 날리다가 정월 보름밤에는 모든 귀신을 연과 함께 날려 보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춘절(春節. Chunjie)이라 부르는 연중 가장 큰 명절이고 미국의 추수감사절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축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세배 절과 세뱃돈 풍습은 지금도 남아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명절로 지키는 음력 정월 초하루를 한국에서는 “설날”이라 부르고 월남에서는 Tet이라 부르며 중국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및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는 “춘절(Spring Festival)이라 부른다. 서(西)오스트렐리아 대학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및 소비자 민족주의 교수인 매기 잉 지앙(Maggie Ying Jiang) 교수는 대영박물관 사건이 촉매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사건은 중국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열띤 해시태그 논쟁으로 비화하여 수억 명의 중국인이 열띤 토의를 했다.

지앙 교수는 두 가지 이슈가 관련된다고 보고 있는데 첫째가 중국과 한국 간의 문화적 정체성(正體性), 흔히 영어로 줄여 말하는 ID(Identity)의 충돌이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김치를 둘러싼 한중 양국 간의 논쟁이다. 둘째는 현재의 한중의 지정학적 환경으로 보고 있다. 포섭의 범위를 넓히려는 의도 외에 "Lunar New Year"란 말은 중국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 수립과 추구 노력이 있다는 지앙 교수의 견해이다. 이 노력은 때로 민족주의(Nationalism)나 국가주의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러 민족이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 트루더 수상의 올해 음력 새해맞이 인사는 두 주장의 현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지난 일요일(설날) 그는 세 가지 메시지를 발표했다.

“모든 캐나다 국민을 대표해서 소피(Sophie. 그의 부인)와 저는 Korean New Year가 행복하고 건강한 토끼의 새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를 위한 메시지인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월남 사람 공동체를 향해서는 즐거운 Tet 원단(元旦)을 맞이하기를 바란다는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세 번째는 한문 글자 新年快樂(신년쾌락)을 쓰고 난 뒤에 영어로 중국 표준어와 광동어로 Happy New Year를 축하했다.

내가 태어난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해방 전에는 “중국”이라 하지 않고 “대국(大國)”이라 했다. 사람도 나이 들고 어른이 되면 너그러워져서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26년 전, 1897년 10월 2일 지금 조선호텔 뒤뜰에 있는 환구단에서 성대한 식이 있었는데 “조선(朝鮮)”이 아니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호칭을 바꾸는 식이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다. 비슷한 일들은 중국 주변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30년 전 “슈퍼 파워”는 미국과 소련이었으나,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다. 200여 년 전인 1840년 중국이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2년 뒤 맺은 치욕적인 난징조약(南京條約)은 사라진 역사의 한 토막이 되었다.

“Chinese” 대(對) “Lunar”의 논쟁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나귀를 팔려고 가던 아버지와 아들 우화가 생각난다. 또한 1978년 10월 말 일본을 8일간 국빈 방문했을 때 등소평(鄧小平)이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만나는 사람마다 일본이 중일전쟁 때 중국에서 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한다고 하니 덩사오핑은 중국이 2000년 전부터 일본에 대해 저지른 잘못이 있다고 했다. 무엇이냐 물으니 그는 그 어려운 한문 글자를 전해서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오린 세월 고생하게 만든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듣는 사람 따라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다.

체구는 작으나 통은 크다는 생각하게 된다. 오래전 평안도 말로 “大國(대국)” 지도자다운 면모가 보인다.

등소평과 등소평 문선
등소평과 등소평 문선

신인섭 (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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