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1931년 신동아(新東亞) 통계실의 재미 있는 숫자와 글

[신인섭 칼럼] 1931년 신동아(新東亞) 통계실의 재미 있는 숫자와 글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3.03.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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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창간호 (출처 동아일보)
신동아 창간호 (출처 동아일보)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1931년 11월에 창간된 신동아 칼럼인 통계실(統計室)에는 92년 전 재미있는 숫자와 글 그리고 표현들이 나온다. 제목은 <통계실(統計室). 숫자(數字)로 본 조선(朝鮮)>이다.

서당 만삼심 여(書堂萬三十餘) 맨 처음이 서당(書堂)인데 1930년 말 서당의 총수는 1만 369개(처 處라고 했다). 교원 10,477, 생도는 150,892명으로 이 가운데 여자가 5,977명 전체의 4%이다. 여자 교원은 겨우 73명으로 0.7%이다. 그러니 서당 한 곳당 15명의 생도가 있었고 선생님은 대개 서당마다 한 분이셨다. 보통학교라 부르던 초등학교가 증설됨에 따라 1년 전과 대비하면 서당의 수는 1,433이 감소하고 교원도 1,431명 생도의 수도 11,355명이나 줄었다. 어림잡아 연간 약 10%나 감소했다. 필자가 보통학교에 입학한 1936년에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3km. 그 중간에 작은 마을에 서당이 있었고 큰 도로에서 가까운 때문에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한 말이 들렸다. 물론 “하늘 천, 따 지”로 시작하는 천자문(千字文)이었다. 신식 학교에 다니는 우리는 이 서당을 지날 때면 큰 소리로 “하늘 천, 따 지”를 외쳤는데 놀리는 말이었다. 선생님이 야단치셨다.

축산물의 생산액은 표로 하면 다음과 같다.

우육(牛肉) 16,682,854원(圓)
돈육(豚肉) 6,105,719
계란 4,373,861
닭고기 2,562,581
소 가죽 1,606,283
  우유 650,866
수육류 통조림 315,472
돼지고기 기름 197,026
우골(소 뼈) 175,758
소 기름  151,067
산양 우유 75,570
56,056
소시지(쏘쎄지) 20,364
버터(우락 牛酪) 8,773
말 고기 8,243
  오리 알(鶩卵. 목란) 7,778
말 가죽 2,532
뼈 가루(骨粉, 골분) 1,013
조류 통조림 348
합계 30,050,436

그러니 소와 관련된 각종 생산액이 약 2천만 원으로 총액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원앙녹수(鴛鴦綠水) 20만짝 결혼 건수는 199,281쌍인데 일본인 1,683쌍과 외국인 35쌍이 포함된 수이다. 하루 평균 546건으로 전년 대비로는 5,016건 증가이지만 인구 천명 비율로는 0.21% 감소이다. (원앙녹수란 원앙이 푸른 물을 만난다는 뜻으로 사이좋은 짝을 이룬다는 말인데 작은 우리말 사전에는 없다.)

매일 출생 2000명 출생자 수는 조선인 760,602인, 일본인 1,432인, 외국인 236인으로 합계는 772,278인이다. 하루 평균으로는 2,116명인데 인구 천명 당 38.1로 일본의 33.0보다 5.1이 높다. (원문은 “1일 평균 2,116인의 핏덩어리가 고고의 소리를 지른 새음이다”) 남녀 별로 보면 남자가 406,438명, 여자가 365,832명으로 여자 100에 대하여 남자 111.1 비율이다.

작년의 뇌우(雷雨) “작년 중의 뇌우 발현(發現) 수”는 483건인데 전년의 93회보다 증가했고 우레 일수는 116일이다. 우레로 인한 사망자(雷死者, 뇌사자)는 13명, 부상(傷者, 상자) 14명, 사망한 돼지 7마리(豚 7頭)였다.

아마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머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90년 전의 글과 지금의 글을 대비하면 놀랄 만큼 변했다. 몇 군데는 원문을 그대로 썼다. 물론 한문이 한글보다 많다.

1932년식 광고 전술 기사( 헤드라인의 ‘술전 術戰’은 잘못이다.)
1932년식 광고 전술 기사( 헤드라인의 ‘술전 術戰’은 잘못이다.)

이 글이 실린 페이지가 8페이지인데 38-39 두 페이지에는 “1932년식 광고전술”이란 글이 있다. 1930년대 일본(그리고 조선)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무렵이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광고 수입이 부쩍 증가하던 시기였다. (신동아가 광복 후 복간한 것은 1964년이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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