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츠가 한국에서 처음 한 일

[신인섭 칼럼]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츠가 한국에서 처음 한 일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3.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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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사명감 표지와 목차
조선신사명감 표지와 목차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일본이 해방 전 광고 분야에서 한국에 미친 영향을 다 적으려면 몇 권의 책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 덴츠(Dentsu. 電通)의 초기 한국 내 활동을 보기로 한다. 그 가운데서도 서울(경성) 지국 창립 5년 뒤인 1911년에 출판한 “조선신사명감(朝鮮紳士名鑑)”을 살피기로 한다.

덴츠의 해방 전 이름은 일본전보통신사(日本電報通信社)이다. 왜 통신사가 광고 대행까지 겸하고 있었느냐? 긴 이야기가 되니 다른 기회로 미룬다. 이 회사의 이름이 덴츠(이하 덴츠)로 바뀐 것은 1955년이었다.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6년 을사늑조약이 체결된 이듬해로 지금의 충무로에 사무실이 있었다. 덴츠가 처음에 한 일로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조선신사명감(朝鮮紳士名鑑)” 출판이었다. (수명의 여성이 포함되어 있다.)

왜 이런 책을 출판했느냐 하는 질문이 생긴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당시 일본의 조선 통치를 위한 기초 자료이다. 달리 말하자면 조선을 움직이는 왕족, 귀족, 그리고 저명인사를 망라하는 주요 인사들의 리스트이다. 아울러 일본이 합병한 조선 총독부의 통치 기구와 기타 각종 공공 및 민간 조직의 리스트이다. 달리 말하자면 조선의 인물 백과사전이다. 내용을 보기로 한다.

발행 일자: 1911년 (메이지. 明治(명치) 44년 5월 20일)

발행인: 일본전보통신사 경성 지국

총 페이지 수: 400 페이지

목차, 제자(題字), 덴츠 소개 등: 22 페이지

왕족, 귀족, 주요 도시 풍경 사진: 30 페이지

신사 사진: 39 페이지

조선신사 명감(왕족, 귀족, 신사): 242(1-242 페이지)

부록(직원록. 職員錄): 86(243-328) 페이지

  •   조선총독부
  •   중추원
  •   조선주차 헌병대
  •   각종 민간 기구, 상업(상공)회의소, 은행, 주요 기업, 언론사, 주요 상점/여관
  •   광고(42 페이지)

총 400페이지에 이르는 책이다. 내용을 보면, 식민지가 된 조선을 움직이는 사람, 기구, 조직, 경찰과 재판소, 조선 주둔 헌병대 그리고 민간 경제 기구와 언론 기관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910년 국권피탈에서 1919년 3•1 독립운동까지 10년간 헌병통치 기간의 전국 헌병대 조직이 지방의 분대장(分隊長) 계급과 이름까지 나와 있다. 그리고 중요한 여관과 각종 상점의 주소와 이름도 나와 있어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판권란 다음에 기재된 42개의 광고 역시 생활 정보의 구실을 하고 있다.

조선주차헌병대(朝鮮駐箚憲兵隊). 조선에 주둔하는 헌병대. 1910년 한일합병 후 3•1 독립운동까지 10년간은 일본의 무단정치 시대로 헌병정치라고도 불렀다. 경성(서울) 헌병대장은 중령(일본 호칭은 中佐(중좌)이고 경성 제1분대와 제2분대가 있었다. 제2분대에는 용산, 수원, 여주, 양주, 개성 분대가 있었다.
조선주차헌병대(朝鮮駐箚憲兵隊). 조선에 주둔하는 헌병대. 1910년 한일합병 후 3•1 독립운동까지 10년간은 일본의 무단정치 시대로 헌병정치라고도 불렀다. 경성(서울) 헌병대장은 중령(일본 호칭은 中佐(중좌)이고 경성 제1분대와 제2분대가 있었다. 제2분대에는 용산, 수원, 여주, 양주, 개성 분대가 있었다.

포함된 인원의 수를 세지는 않았으나 왕족 5명, 귀족 77명, 저명인사 1,800명쯤으로 추정되는 총 1,900명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 상훈 관련 사항, 경력 등이 성별(姓別)로 나와 있다. 왕족과 귀족은 모두 사진을 게재했다.

성(姓) 별로 나누어 수록한 신사 소개. 윤(尹)으로부터 시작해서 선(鮮)에서 끝났다.
성(姓) 별로 나누어 수록한 신사 소개. 윤(尹)으로부터 시작해서 선(鮮)에서 끝났다.

부록으로 되어 있는 직원록(職員錄) 86페이지에는 총독부 기구가 부, 국, 과까지 직원 성명, 관등 그리고 필요한 부서에는 통역관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또한 중추원(中樞院), 경찰과 사법부 조직 그리고 각 지방 분대별 헌병대 명단과 분대장의 계급과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민간 조직으로는 적십자, 애국부인회, 민단, 상공회의소, 각 신문 통신 잡지사, 은행과 회사, 중요한 상점들의 취급 업종, 명칭, 주소가 기재되어 있다. 아울러 호텔, 여관, 중요한 요리점 이름과 주소가 기재되어 있다. 언론 관련 자료에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 통신사, 신문, 잡지사의 이름과 특파원의 주소, 전화번호가 나와 있다. 마지막 광고 섹션에는 지금도 발행하는 요미우리(讀賣), 아사히(朝日), 마이니치(每日) 신문과 당시의 유명한 지지신포(時事新報), 조선 내에서 발행하는 일본어, 조선어 신문의 광고가 나와 있다.

민간 기구 가운데는 일본 적십자(赤十字) 조선 본부,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 조선본부, 각 민단 관리자 및 의원, 각 상공회의소, 각 신문통신잡지사 등이 있다. 그리고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호텔/여관 및 요리점 이름과 주소가 나와 있다.
민간 기구 가운데는 일본 적십자(赤十字) 조선 본부,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 조선본부, 각 민단 관리자 및 의원, 각 상공회의소, 각 신문통신잡지사 등이 있다. 그리고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호텔/여관 및 요리점 이름과 주소가 나와 있다.

1910년대 조선의 결정권자(Decision Maker)와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총람으로 합병한 조선의 기본적 시장조사 자료인 셈이다. 아마도 이 자료 수집에는 수년에 걸쳐 상당한 비용이 투자되었을 것이다. 덴츠가 대행한 광고에 대한 자료는 어디에도 공표된 것이 없으나, 사실상 해방 전 일본의 주요 기업(광고주)은 모두 덴츠의 서비스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다. 책의 서두에 나와 있는 덴츠의 4 페이지 소개 사진과 업무 내용을 보면 1901년에 창립한 뒤 1906년에 한국에 진출한 이 통신과 광고 사업을 겸영한 회사가 얼마나 급속하게 발전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1920년대에 접어들자 일본에서 들어오는 광고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광고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이 내용이 덴츠가 매년 발행하던 신문총람(新聞總覽)에 발표되었다. 1940년 8월 일본 정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동아, 조선일보가 폐간 되자, 덴츠의 요시다 히데오(吉田 秀雄) 과장이 서울에 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유는 뻔한데 한국의 두 신문에 게재하던 광고에서 생기던 커미션 수입이 끊어지게 된 뒤 대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시다는 비록 직책 상으로는 일본의 일개 광고회사인 덴츠의 지방 과장이었지만, 그가 관장하던 일본 기업의 해외 신문 광고는 방대했다. 일본 내의 수백 개 지방신문 그리고 조선, 대만, 사할린, 만주, 중국에 진출한 일본어 신문 광고를 관장하던 요시다의 권한은 방대했다.

덴츠 소개 페이지
덴츠 소개 페이지

1945년 8월 15일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 이후 요시다는 덴츠 사장이 되었다. 그는 1950년대 뉴미디어인 상업 라디오와 TV가 대두하자 가장 앞장서서 이 뉴미디어 일본 도입과 발전을 제창했다. 그는 덴츠는 물론 일본 광고 산업 전체를 국제화하는 데에 앞장섰다. 세계 유일한 광고단체인 국제광고협회(IAA) 극동지역 부회장이 되었다. 1969년에는 IAA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일본 도쿄)에서 이 대회를 주최했다.(한국은 1996년에 이 대회를 주최했다.) 1957년에는 처음으로 아시아 광고회의를 창설해 도쿄에서 주최한 것은 그의 공로였다. 한국은 올해에 세 번째로 이 대회를 주최하게 되어 있다. 아시아 광고연맹을 창시한 것도 덴츠의 영향이었다.

112년 전에 서울에서 출판된 “조선신사명감”은 이제 세계 5위의 광고회사로 부상한 현재 덴츠의 뿌리를 더듬는 이정표의 하나가 되었다. 한문 투성이인 이 일본어 신사명감은 글로벌 시대에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일 것이다

 


※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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