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바람과 풀잎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바람과 풀잎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19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란다. 사람들이 바쁘고 똑똑해진 탓이다. 제안서나 프리젠테이션의 방법도 바뀌었다. 결혼식 축사의 패턴을 보라. 하나만 콕집어 당부하고 3분안에 끝내야 환영받는다.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의 시대가 아니다. 청중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눈을 누구와 맞추고 동선을 어떻게 그려 나가고 호흡을 어떻게 가져가고 하는 코칭법도 초등학교 웅변학원에서나 통용될 이야기다. 군더더기를 들어내고 솔루션에 집중해야 한다. 형식이 본질을 가려선 안된다. 몇일전 심사에서 한 업체는 아예 솔루션을 먼저 이야기하고 근거는 뒤에 덧붙였다. 두괄식은 자신감에 차보이고 지루하지 않아 속이 시원하다. 상대가 더 잘 아는 상황 분석은 시간도 날리고 감점의 빌미도 된다. 중요한 포인트는 정보나 지식이 아니다. 자신만의 관점이다. 자신만의 인사이트와 자신만의 솔루션이다.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마켓컬리, 젠틀몬스터, 무신사를 이끈 인재들의 공통점이 있다. 나무 잎사귀에 부는 한줄기 바람에서 영혼의 떨림을 느끼고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서는 풀잎의 감수성이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관점을 시대적 욕구와 연결해서 솔루션을 엮어내는 융합력이다. 감수성과 융합력을 갖춘 사람들이 디지털 시대의 주인공이다. 감수성은 호기심으로 변해 질문의 능력으로 발전된다. 융합력은 소수의 관점을 시대적 기호로 연결한다. 감수성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융합력으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디자이너 양성소 무신사를 보자. 무신사는 옷이나 신발을 파는 곳이 아니다. 착장에 대한 이야기를 파는 곳이다. 그들의 홈페이지에는 제품이나 가격이 보이지 않는다.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관심있는 패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룩북, 스트릿 스냅사진, 뉴스, 기사, 커뮤니티 댓글등 다양한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널려져 있다. 소비자는 이 곳에서 자신의 패션 감각을 확인하며 실현한다. 이들은 마케팅이 스토리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콘텐츠를 공유하고 화보를 제작해주고 협업 상품도 개발한다. 심지어 무이자로 대출까지 해준다. 반스, 디스이스네버댓, 도롭잇 등은 그렇게 성장한 브랜드다. 디자이너를 경쟁자가 아니라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어 패션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토스나 ‘오늘의 집’등 플랫폼의 강자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감수성과 융합력으로 시대를 읽고 시대를 열어간다. 

감수성과 융합력이 들어오는 길목은 어디일까? 토요타의 T 자형 인재를 보자. 세로 축은 깊이 파고드는 전문성이다. 그 위로 넓게 포진한 가로 축은 보편성이다. 기술을 익혔다면 기술을 접목시킬 사람들의 문제로 다가서라는 뜻이다. 이 보편성을 21세기의 아인쉬타인 스티브 잡스는 인문이라고 했다. 인문은 인간이 걸어왔고 걸어갈 통로다. 인문은 인간의 문이다. 무신사가 100달러 지폐속에 새겨져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이 거래를 트고 싶은 상대에게 책을 빌려 말을 트고 호의적 관계로 끌고갔다는 일화에서 힌트를 얻어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우군으로 만든 아이디어를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책이든 영화든 전시회든 세상사의 모든 이야기를 쓸어담아라. 사람을 알아야 사람을 만족시킬수 있다. 마케팅의 솔루션도 그곳에 있다.

사진: Aarón Blanco Tejedor / Unsplash
사진: Aarón Blanco Tejedor / Unsplash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동서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객원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