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담장과 굴뚝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담장과 굴뚝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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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정본부TV
출처 교정본부TV

이상한 변호사 박은빈과는 오래전 인연이 있다. 그녀는 대한민국광고대성을 받은 2007년 삼성생명의 ‘인생은 길기에’ 광고 캠페인의 모델이였다. 촬영장에서 본 그녀는 차분했고 나이모를 깊이가 있었다. 이십년이 지나 청룡상 시상식에서 보여준 그녀의 면모는 더 한층 성숙했다. 그녀는 각자의 특성을 다름이 아니라 다채로움으로 인식하고, 나는 알아도 남들은 모르고 남들은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런 이상하고 별난 일들도 가치 있고 아름답게 생각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은빈의 배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배려다.

문득 지리산 구례땅에 자리잡은 운조루의 주인장이 떠올랐다. 운조루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자가 새겨진 쌀독이 있다. 집주인 류이주는 30가마가 넘는 쌀을 해마다 뒤주에 채웠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운조루의 미담은 그 때문이 아니다. 쌀을 가져가는 사람을 볼 수 없게 담장을 높이고 밥짓는 연기가 밖에서 보이지않게 굴뚝을 낮춘 때문이다. 이웃의 자존심을 먼저 생각한 속깊은 주인의 배려였다. 이를 안 마을 사람들은 뒤주속 쌀을 믿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으며,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양보했다. 운조루의 배려는 상대를 한번 더 생각하는 배려다.

세상사 수만가지의 배려가 있다. 결혼을 앞둔 커플을 생각해보자. 이들의 배려는 한쪽 눈을 감는 배려다. 어느 서양 철학자가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상대를 들여다봐야 하지만 결혼 후에는 한 쪽 눈을 감아야 한다고 했다. 살다보면 서로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고 다른 의견도 생긴다. 멀어버린 눈이 떠진 때문이다. 다툼은 자연스런 일이다. 금슬을 유지하는 비법은 간단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져주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시키는 시간도 벌고 점수도 따놓는 것이다. 나를 낮추면 상대는 올라간다. 서로 나란해야 오래갈 것이다. 부부의 배려는 자신이 먼저 작아지는 일이다.

이번엔 돈 줄을 쥔 기업의 배려심이다. 많은 기업들이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 봉사한다며 ESG경영과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을 내세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재활용과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고 아모레퍼시픽은 태평양그린운동이라며 탄소배출량을 절감하고 있다. 구글은 구글 스트리트 뷰 서비스를 이용해서 광장공포증을 극복하고 사진가로 활동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마존은 아마존의 배달원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켄트를 등장시켜 코로나와 기후변화에 맞서는 자신들을 홍보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순수성이다. 대부분 자신들의 비지니스와 연관시키는 마케팅 목적의 활동들이다. 자신의 미래에 도움되는 아이템으로 지렛대를 삼아 들어가는 비용을 더 큰 이익으로 돌려받겠다는 계산이다. 이 시대의 정보와 소비를 주도하는 MZ세대가 공공성에 민감하니 그들의 환심도 사고 기업의 안위도 지켜 가재도 잡고 도랑도 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재빠르고 영리해서 겉으로만 흉내내는 기업의 포장술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다. 이해타산없이 상대를 돕는 마음이 배려의 기본이라면 이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도 궤도수정이 필요하다. 또 하나 생각해 볼게 있다. 미래를 위해 친환경에 대한 투자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곁엔 음지에서 고통받는 힘없는 이웃들이 여전히 많다. 가려져있는 재소자 문제도 그것 중 하나다. ‘비바람 맞으며 나 홀로 견디기 어려워 소리내어 울었네. 창해 일속의 미약한 존재라지만 다시 일어나야하리. 슬픔을 겪은 자만이 강인한 인생의 참다운 길을 걸으리’. 시인을 꿈꾸는 한 재소자가 참회의 마음으로 쓴 시다.

작년 10월,법무부 교정본부와 감사나눔연구원이 함께 나서 재소자의 교화와 갱생을 돕는 ‘만델라 프로젝트‘를 출발시켰다. 하루 다섯번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시로 써서 발표하는 ‘오감사공모전‘도 열고있고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신문도 발행하고 있다. 이들은 여건만 허락된다면 프로젝트의 범위도 넓히고 효과를 높일 많은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 이들의 활동을 도와줄 선의의 기업은 어디 없을까? 태어나는 아이들만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의 실수로 격리되었다 돌아오는 사람도 함께 살아야 할 엄연한 이웃이다. 그들의 안착과 정착도 우리 사회의 필연적 과제다. 배려의 참뜻을 살려 지금 당장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담장을 쌓고 굴뚝을 높여 줄 기업의 진정성어린 참여를 고대한다.


김시래 동서대학교 객원교수, 부시기획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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