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우지 않는 제안서 쓰는 법 2편

밤새우지 않는 제안서 쓰는 법 2편

  • 박경하
  • 승인 2023.11.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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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와 용어를 많이 알게 되면 밤새우지 않아도 된다.
사실 당신은 그 단어를 알고 있지 않을 확률이 크다.
사진: Andrew Neel / Unsplash
사진: Andrew Neel / Unsplash

지난 1편에서는 “시장 분석을 잘해야 밤을 새우지 않는다”라는 주제로 이야기했다. 이번 2편에서는 “단어를 많이 알고 있으면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된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당황한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제안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유사한 의미지만 서로 다른 여러 단어가 존재하는데 제안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늘 같은 단어를 “여러 곳”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여러 곳에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쓰다 보면 스스로 알게 된다. 무언가 잘못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높아지고 있다”라는 의미에 해당하는 단어는 어떤 게 있을까. 상승, 증가, 제고, 향상 등 언뜻 생각해도 4개나 된다. 이 단어들의 뜻을 구분해서 쓸 줄 안다면 당신은 이미 아주 훌륭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을 위해 풀어보자면 이렇다. 소비자의 인지도가 ‘상승’하니 고객 문의가 ‘증가’하였고, 이에 매출이 ‘제고’됨과 동시에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어떤가. 묘하게 같은데 또 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해당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달달 외고 있지 않더라도 유사한 의미가 있는 여러 가지 단어를 기억하는 상태에서 문서에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된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어느 정도는 기반이 되어 있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만의 기준, 문법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여러 단어를 자유자재로 쓴다는 의미는 나만의 적재적소가 있다는 의미다.

또 한가지. 단어를 많이 아는 것 이상으로 ‘용어’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남용되거나 오용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한다. 콘셉트, 브랜딩, 전략, 전술, 타깃, 타기팅, 페르소나, 아이덴티티, 포지셔닝 등 일상적이고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용어가 실제 어떤 의미인지 내가 어떻게 적용해 써야 하는지 숙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타깃과 페르소나는 어떻게 다를까. 타깃은 우리 제품을 구매했거나 구매하려 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성, 연령, 구매경험, 빈도, 관심사 등 정량적 및 정성적인 요소들로 구분한 집단들, 혹은 여러 집단 중에서 가장 먼저 목표로 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페르소나는 이보다 한층 더 나아간 개념이다. 타깃을 나누고 그룹화하는 여러 요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목표로 하는 정의된 타깃보다는 조금 더 판타지적인 가상의 인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A 브랜드의 타깃을 4050대의 남자, 중장년층이라고 한다면, 페르소나는 같은 4050대라도, 다양한 취미 활동을 기반으로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Active Y족 등으로 명명될 수 있다. 단순히 우리 제품을 주로 소비하는 사람들을 정의하는 것을 넘어 우리 브랜드를 소비하는 층의 이상적 이미지를 그리는 작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판타지를 수집한다는 말이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판타지를 수집하고 정의하고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브랜드의 이미지도 그와 유사하게 개선될 수 있다.

돌아가서, 단어도 많이 알고, 용어도 제대로 알고 있으면 평소보다 할 말이 많아진다. 상승과 향상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고, 타깃과 페르소나를 자신만의 기준으로 구분해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지고 막히지 않고 얘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면 당연히 문서를 쓸 때도, 예전에는 1장 쓰기도 벅찼던 게 이제는 한 자리에서 서너 장은 거뜬히 쓸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된다.

아울러 아는 단어가 많아지고 각 단어의 뉘앙스 차이를 자각하니 논리의 흐름도 좀 더 명확하게 정리될 수 있다. 내가 자주 드는 예 중에 “미장센”이라는 게 있다. 박찬욱 감독 영화에 대한 평론을 보면 꼭 이 단어가 나온다. 본래는 무대연출의 일종으로 등장인물의 배치나 무대 장치, 조명 등에 대한 계획을 일컫는다고 하는데, 우리 머릿속에 연상되는 이미지는 현실에서는 흔히 보지 못하는 벽지 색깔, 가구 모양, 각종 무늬, 영화의 전반적인 색감 등이다.

영화 후기를 블로그에 남긴다고 가정해 보자. 미장센이라는 단어를 알고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면, 미장센이라는 단어를 활용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가면 된다. 그런데 미장센이라는 단어를 아예 모른다면 어떨까? 벽지도 얘기해야 하고, 가구 모양도 얘기해야 하고, 창문에 새겨진 무늬도 얘기해야 한다. 단어의 힘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밤을 새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할 말이 없어서. 흐름을 못 잡아서. 그리고 문장을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단어를 많이 알면 할 말이 생긴다. 예전에 ‘상승’이라는 단어 하나만 알았을 때는 머릿속에 어떤 정보가 들어와도 다 상승으로 이어지던 것들이, 향상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배우면, 기존에 상승에 연결되어 있던 정보들 몇이 향상이라는 단어로 연결되어 붙을 것이다. 그렇게 단어를 알면 알수록 생각의 갈래가 여러 개로 쪼개지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 안에 다양한 생각들이 구조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단어를 어떻게 익히는 게 좋을까. 제안서를 쓸 때, 아니 하다못해 메일 하나를 보낼 때도 모니터 한쪽에 네이버 사전을 띄워 놓는다. 그리고 아는 단어라도 한 번씩 쳐보면서 의미를 되새기고, 유의어와 반의어를 학습해 보자. 그리고 새로운 단어와 용어를 습득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글들을 읽는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면 점점 알게 될 것이다. “어휘력”과 “제안력”은 비례한다는 것을.

 


박경하 엠포스 데이터전략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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