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일론 머스크의 ‘X’는 어떤 의미가 될까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일론 머스크의 ‘X’는 어떤 의미가 될까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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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ulian Christ /  Unsplash
사진: Julian Christ / Unsplash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모르는 남성과 여성 간 만남 자리인 소위 소개팅에 나갔던 여자 친구 하나가 씩씩거리면서 그날의 상황을 복기했다. SNS 시대 이전의 소개팅에는 중간 매개자로서 주선자가 처음 만나는 장소에 나가서, 소개받는 이들이 서로 얼굴을 모르니 각기 불러서 자리에 앉히고, 아주 간단한 소개를 해주고 둘이 얘기하라며 자리를 뜨는 게 관례였다. 그런 시절에도 ‘007’ 미팅이란 이름으로 서로 사전에 옷차림이나 눈에 띌 만한 외양 정보를 알려서, 주선자 없이 만나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소셜미디어가 활발해지면서는 계정으로 사전 탐색하여 얼굴까지 확인하고 나가는 게 당연시되었다. 그리고 각자 휴대폰이 있으니 미리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현장에서 바로 메시지로 상대방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 여자 친구는 그다지 치밀하게 서로 확인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보다. 약속한 커피숍에서 혼자 있거나 새로이 들어오는 남자를 한동안 보다가 촉이 오는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에게 가서 조심스럽게 “저, 오늘”이라고 머뭇대며 말을 건넸단다. 그런데 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그 남자가 두 손을 가로지르며 ‘X’자 표시를 하더란다. 그 장면을 전하는 여성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냥 ‘아니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그렇게 행동으로 거부의 뜻을 밝혀야 해?!”

그렇게 ‘X’는 거부나 부정의 뜻으로 쓰인다. 시험지의 틀린 답안에 보통 ‘X’ 자를 긋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어느 관공서에 제출하는 서류에서 동의 여부를 묻고 체크하는 난이 있었다. 동의란에 ‘X’자 표시를 해서 보냈더니, ‘✓’로 바꾸어달라는 요청이 왔다. ‘X’는 ‘동의하지 않는다’로 읽힐 수 있단다. 관료 사회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순순히 따랐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X맨’이란 표현은 이제 첩자, 고문관, 이적 분자 등의 뜻으로 통용된다. 그런 부정의 뜻과 같은 선상에서 X에는 강력한 저항도 들어 있다. 비판하는 이들이 소리를 내지 못하게 강압적으로 막던 1970, 1980년대의 독재 정권 치하의 한국에서, 시위대가 까만 ‘X’ 자가 새겨진 하얀 마스크를 하고 경찰과 대치하는 광경은 곧잘 볼 수 있었다. 외국에서도 언론 탄압에 저항할 때, 지금도 ‘X’ 자 마스크는 강렬한 표현 도구로 쓰인다.

이 칼럼에서도 소개했던 미국 조지아 주 도라빌이라는 인구 1만 명 남짓한 동네의 경찰이 지원자 모집 겸 홍보용으로 만든 영상에 ‘Die Motherfuxxer Die’라는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노래 제목에 x가 두 번 연달아 들어갔는데, 노골적으로 욕설을 쓸 수가 없으니, 철자를 부분적으로 가린다고 그렇게 했다. 그러나 누구나 그 x 뒤에 숨은 철자를 안다. 그렇게 x는 뻔한 것을 가리는 방어나 눈속임의 의미도 가진다. 영화 등급에서 ‘x’는 선정성을 뜻한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을 원하니, 보통 ‘트리플 X’, 곧 ‘XXX’라고, 광고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보포모포(Bopomofo)’라는 사람 대부분이 무슨 뜻인지 감도 잡기 힘든 낱말이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들 중에서도 이 단어를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중국 남경 정부의 중화민국 시대에 중국어의 과학적 쉬운 표기를 위해서 만든 ‘주음부호(注音符號)’의 처음 4글자 ㄅㄆㄇㄈ의 발음이 바로 ‘보포모포’이다. 대륙의 중국과 수교를 하지 않은 1980년대 초에 중국어를 처음 배운 나는 주음부호로 중국어 발음을 익혔다. 선배들은 대륙에서 쓰는 간자(簡字)를 정리해 놓은 표를 보면서 논문을 읽었는데, 나는 복학 후인 1980년대 후반에야 대륙에서 주음부호 대신 쓰는 한어 병음을 배우게 되었다. 그때 ‘x’가 ‘s’ 비슷한 발음으로 쓰인다는 게 가장 헷갈렸다. 예를 들면 시진핑 주석의 성(姓)을 ‘xi’라고 한어 병음에서는 표기한다. 제 발음자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남은 알파벳이 ‘x’여서 가져다 썼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에서 ‘x’는 세 가지 이상의 발음으로 쓰인다. 외국어 발음 배울 때 쉽지 않은 알파벳의 대표이다.

수학에서 방정식을 배우며 미지수, 알려지지 않은 수를 나타내는 걸로 역시 ‘x’를 쓴다. 로마자에서는 숫자 10을 뜻하는데, 이는 새로운 시작이자 꽉 찬 상태를 가리킨다. 채웠으니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새로이 채우려면 무언가와 교환을 하고, 경험해보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영어 단어에서 ‘ex-’로 시작하는 것들을 ‘x’로 줄여서 써버리는 경우를 꽤 본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단어들인 ‘교환(하다)exchange’, ‘경험(하다)experience’, ‘확장하다extend/expand’ 등을 ‘x’로 퉁치듯 표현하기도 한다. 군대의 ‘PX’, 게임 경험치를 뜻하는 ‘xp’, 애플의 ‘XR’ 등이 그 예이다.

트위터를 ‘X’로 바꾼 일론 머스크는 ‘X마니아’라고 할 정도로 집착 정도가 심했다. ‘SpaceX’처럼 회사 이름에 ‘X’를 붙인 것으로도 모자라서인지, 자식들 몇몇의 이름에도 ‘x’가 들어갔다. 그런데 ‘Xavier Musk’라는 머스크의 쌍둥이 자녀 중 하나는 2022년 18세가 되며 여성으로 성전환하고 이름에서 과감히 ‘x’를 빼 버리고, ‘Vivian Jenna Wilson’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렇게 ‘x’를 제거하며, 아버지까지 부정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참으로 꿋꿋하게 ‘X’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머스크의 X가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브랜드 관점에서도 주의를 기울일 사례이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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