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마음의 문을 열 때 일어나는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마음의 문을 열 때 일어나는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6.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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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한 줄기 조명이 스피커 앰프 스위치를 비춘다. 손가락으로 튕겨 ‘ON’ 으로 올리면서 조명은 전자오르간 건반을 경쾌하게 가르는 연주자의 손으로 옮겨 간다. 전자오르간 연주와 함께 어두움 속에 이곳저곳 악기와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어느 락밴드의 공연 무대 같다. 리드 기타와 베이스를 훑고 드럼과 탬버린까지 한 줄기 조명 빛을 받고, 연주가 거기에 공감각적으로 덧씌워진다. 악기와 연주자들의 손만 계속 화면을 채운다. 이윽고 마이크를 든 보컬의 모습이 보인다. 벙거지 모자를 쓰고 약간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경쾌한 멜로디에 연주자들의 흥도 오르고, 어두운 조명 속에 연주자들이 서로 몸짓을 주고받는다. 점점 조명이 밝아오고 카메라는 연주자들의 손과 악기에서 얼굴까지 포함된 이들의 신체 전체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가운데, 이런 가사로 1절이 끝난다.

Close my eyes. Open my heart. (눈을 감아. 마음을 열어.)

더욱 빠르고 신나게 2절이 시작하며 조명이 환해지고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모습과 동작이 환한 무대 위에서 제대로 보인다. 뭔가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들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눈에도 다운증후군, 아스퍼거 증후군 등의 발달장애가 뚜렷하다. 당혹스럽고 착잡한 심리상태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겪고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보컬의 미소인지 비웃음인지 서글픔인지 어려 감정이 엇갈리면서 조합된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이전의 가사로 노래를 마친다. 그리고 슬로건 자막이 뜬다.

See the Person. Not the Disability. (사람을 봐라. 장애를 보지 말고.)

2011년 칸광고제의 시사회장에서 이 영상을 접하고 벌거벗은 몸을 들킨 듯했다. “’뭐지?’ ‘노래 괜찮네’ ‘보컬 음색 매력 있네’”로 1절을 마치고, 2절에서 연주자들의 전면이 하나씩 나오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장애인 멤버가 있네’ ‘아니, 이게 뭐야’ ‘보컬까지’”로 충격의 강도가 증가되었다. 청각과 시각의 인식이 충돌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음악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균열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슬로건과는 정반대로 장애만 보고, 사람은 제대로 보지 않고, 맘대로 재단하고 있었다. 그해 칸광고제 ‘크리에이티브 효과(Creativene Effectiveness)’ 부문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오스트레일리아 장애인 도움 단체인 ‘스코프(Scope)’의 빅토리아 지역 본부에서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Close My Eyes’란 제목의 이 노래를 부른 ‘Rudely Interrupted’란 밴드는 여섯 명의 멤버 중 다섯 명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영상을 위하여 급조된 밴드가 아니다. 2006년에 결성하여 오스트레일리아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 등지에서까지 공연한 나름 실력 있는 밴드였다. 멤버들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흥겨워 하고 있었는데, 이후 혼란 속에 빠져버렸다. 인간이 아닌 장애 만을 보고 있던 내 자신을 직시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에 무엇을 해야할지 미래를 두고 고민하는 친구에게 이런 한시 흉내 낸 낙서를 써주었다.

君問前途難

雲霧遮日月

何進不知向

暗中開心眼

앞길이 험하냐고 물었지.

구름과 안개로 덮여 해와 달도 보이지 않는다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앞으로 가겠냐고.

(이보게나) 어둠 속에서 마음의 눈이 열린다네.

어느 한 면만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 육체의 눈보다 마음의 눈의 어둠 속 시력은 훨씬 뛰어나다. 어둠이 빛이 되고, 진정으로 음악을, 그 사람을 즐기는 반전은 마음을 열며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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