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추석특집-보름달에 벌어지는 일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추석특집-보름달에 벌어지는 일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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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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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어릴 때 친구 하나는 미국에 이민가서 ‘90년대 초에 의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전역의 범죄율이 높던 시기인데, 대도시로 치면 뉴욕이 디트로이트나 마이애미 같은 곳과 수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런 뉴욕시에서도 가장 험악한 동네들인 할렘과 브롱크스가 만나던 지점에 있던 컬럼비아 대학교 병원에서 수련의와 전문의 과정을 거친 그 친구는, 정기적으로 야간 응급실 담당을 하곤 했다. 마침 그 시절에 나도 뉴욕시에 머무르고 있어서, 그 친구가 쥐어짜듯 낸 시간에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가 힘들어하면서 곧잘 하던 말을 기억한다.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정말 뭔가 이상한 기운이 있나 봐. 풀문(full moon)에 응급실 야간 근무가 걸리면 그날은 ‘죽었다’라고 외치고 들어가야 해. 별별 사건들이 다 벌어지고,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이 세 배는 많은 것 같아.”

그에게 시시콜콜 어떤 환자들이 왔는지 물어보면 당시의 스펙터클한 뉴욕의 뒷골목 밤거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총상(銃傷) 환자가 많은데, 총기 사고도 여러 종류가 있단다. 신체 부위로 치면 팔다리 사지는 기본이고, 얼굴에 총알을 맞고도 걸어 들어온 이가 있는가 하면, 서로 총알을 주고받은 이들이 함께 오기도 한단다. 스스로 세상을 뜨려 의도했든 단순히 장난하다 난 오발 사고든 혼자 일 벌이고 실려 온 이들도 많다고 한다. 총상 이상으로 칼부림이나 둔기를 휘두르며 벌인 육체적 충돌로 인한 사고도 당연히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정말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사람들의 정신이 이상해져서 서로 치고받고 사고가 많이 생기고, 응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들도 그의 말대로 세 배 이상이 되었을까? 당시 대학원에 몸담고 있던 학생으로 사실관계를 논증해 들어갔다. 인터넷이 널리 퍼지기 전이라 자료를 구하기 힘들었다. 구체적인 수치는 나오지 않았는데, 대체로 오래 의료인으로 생활하거나 심리학계에 있었던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딱히 보름달이 인간 심리에 폭력적인 영향을 주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정도로 ‘보름달이 뜨면 사람들이 미쳐 돌아가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사고를 친다’는 친구의 믿음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친구는 고달픈 수련의와 전문의 과정을 지나서 개업의가 되었다. 밤까지 일하는 날도 없었지만, 그래도 보름달이 뜨면 그는 “오늘 밤도 응급실이 붐비겠구나”라고 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어 온라인으로 검색하니 보름달과 응급실에 들이닥치는 환자 수의 상관관계를 다룬 논문이나 조사 결과들이 꽤 있었다.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도 그런 조사들이 꽤 많았던 걸 보면, 내 친구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의료인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하긴 서구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인간이 늑대로 변하고, 합당한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멀쩡한 사람이 죽는다는 식의 전설들이 지치지도 않고 전래되며, 꾸준히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 그러니 의문이 들 법도 하고,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검사를 해본 이들이 꽤 되었는데, 모든 결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즉, 보름달이 뜬 날과 다른 날들 사이에 응급실에 오는 이들의 숫자가 의미 있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숱한 조사 결과들을 내밀었지만, 나의 친구는 자신이 보름달이 뜰 때 야간 근무를 하면 항상 그랬다면서 계속 ‘세 배’ 운운했다. 몰아붙이지는 않았지만, 대략 비슷한 경우가 있다. “오후에 내가 시계를 보면 항상 4시 44분인 거야. 섬뜩해.”라고 말하는 이들을 몇몇 봤다.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설명하는 건 아주 쉽고, 증명도 되어 있다. 그들은 4시 2분, 혹은 다른 시간을 가리킬 때 시계를 본 건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그냥 넘겨버린다. 시계를 보며 확인한 대부분의 시간을 기억하지 않는다. 숫자 ‘4’가 겹친 그 시간이 특이하여 기억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특별한 밑바탕에는 ‘죽음’을 의미한다는 불길한 믿음이나 미신이 있다.

보름달이 뜨는 밤도 비슷한 경우이다. 의사 친구는 어느 하루, 혹은 두어 차례 응급실에 환자들이 엄청나게 들어온다 싶은 날 하늘을 보거나 다른 친구가 하는 말을 들으며 보름달이 뜬 밤이란 걸 새삼 깨달았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서 보름달이 뜨면 이상행동을 하는 인간들이 늘어나고, 자기 경험으로도 응급실에 들이닥치는 이들이 많다며 그 믿음을 확신으로 연결하는 고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부정적일수록 사람들 기억에 깊이 각인되고, 그게 강력한 믿음으로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걸 교묘하게 브랜드 활동에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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