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里仁〕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결이 바른 공존(共存)으로

〔카페★里仁〕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결이 바른 공존(共存)으로

  • 장성미 칼럼리스트
  • 승인 2021.11.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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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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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꽃보다 더 화려한 색을 품고 가을이 온 산하를 물들이며 곱게곱게 내려 앉다 또 다른 계절로 무심히 옷을 갈아입으며 떠나가지만, 우리는 무심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어떤 연유로 종종 흔들리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江漢曾爲客(강한증위객) 강한에서 한때 머물며 지내던 시절

相逢每醉還(상봉매취환)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취해서 돌아갔지

浮雲一別後(부운일별후) 떠도는 구름처럼 긴 이별 뒤로

流水十年間(유수십년간) 흘러가는 물 따라 가버린 십 년 세월

歡笑情如舊(환소정여구) 환한 웃음 마음은 예전 그대로건만

蕭疏鬢已斑(소소빈이반) 쓸쓸하게 귀밑머리 어느새 희끗희끗 해졌네

何因北歸去(하인북귀거) 무슨 까닭에 그대는 북으로 돌아가야 하고

淮上對秋山(회상대추산) 회수에서 나는 가을 산을 마주하나

〈淮上喜會梁州故人〉: 회수에서 반갑게 만난 양주의 옛 친구 /韋應物(위응물)

자연이 가져온 이 계절의 잔치 앞에서 한 시절 의기투합(意氣投合)했던 그리운 옛 벗을 마주하자 그 벅찬 심정을 가누지 못하며 친구를 향하는 정(情)이 오롯이 담겨 전해져 온다.

그 친구를 예전처럼 마음만 가지면 어느 때고 만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고, 다시 서로의 충실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하여 현재의 자리로 각각 돌아서가야만 하게 되니 마음에 점점이 새겨지는 여운이 한없이 자리한다.

한평생 우리의 인간 관계망(關係網)은 다양하고 다채롭게 모이고 흩어지고 만나게 된다. 그 중에 벗을 사귐에서 오는 인생의 모습 또한 측량할 수 없는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엮어진다.

살아가는 동안에 벗을 사귀며 귀하고 선한 만남으로 이어가며 서로의 마음을 나눌 친구가 세상에 있다면 힘이 되고 인생은 더 풍요로워 질것이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젊은 시절에 백성들의 추앙(推仰)을 한 몸에 받으며 중심 인물로 부상(浮上) 할 때 권좌(權座)를 잃을까 두려움에 처한 사울 왕은 그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였고, 그 위기에 놓인 친구를 아들 요나단은 온전히 도우며 아버지 사울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아끼지 않고 평생 알뜰이 다윗을 보살폈고 심지어 자기의 몫인 왕위를 가져갈지도 모를 존재인데도 우정(友情)을 져버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自身)의 목숨처럼 친구를 지켜주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이 마음에 합한 친구와의 우정을 지켜낸 사람이 또 떠오른다. 관중(管仲)의 여러 허물과 실수를 수없이 덮어주고 변호해주었던 사려 깊었던 친구 포숙아(鮑叔牙)가 바로 그다. 그는 당시 최고권력자의 신임을 받으며 일하게 되었을 때 관중의 능력 있는 재능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자 잠잠이 있지 않고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천거(薦擧)하여 마침내 인정을 받게 했고 재상(宰相)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하는데 주저함 없이 돕는 사랑이 많고 품이 한없이 컸던 친구였다.

그러나 인생이란 참 야속하여 만나지 말았써야 할 잘못된 관계로 뒤엉키며 돌이킬 수 없는 악 연(惡緣)을 맺으며 친구라는 이름이 마감되는 치명적인 경우도 세상에는 허다(許多)하다.

그 대표적인 예는 중국에서 병법가(兵法家)로 널리 알려진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저자 손무(孫武)의 후예인 손빈(孫臏)과 방연(龐涓)의 그을린 우정이다. 그들은 당시에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하며 형제애를 맺을 만큼 돈독(敦篤)한 정으로 뭉친 친구였다. 방연이 먼저 부름을 받아 정계(政界)에 입문하며 출세하자 손빈을 불러 들였다. 그러나 자기보다 중히 쓰임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자신의 앞길이 막힐 것 같은 두려움에 손빈을 모함하고 쫓겨나게 하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형제와 같던 우의(友誼)도 망각한 채 친구에게 극형(極刑)을 가하여 다시는 걸을 수도 설수도 없게 두 다리를 잘라버렸다. 결국 그들의 선(善)한 교류(交流)는 간 곳 없고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리며 죽어야 끝나는 원수(怨讐)로 변해버렸다.

우리의 정치사에서도 친구가 서로의 탐욕(貪慾)에 불을 지르며 함께 죄(罪)의 길을 도모했던 욕된 우정이 있다. 그들은 우리역사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아픔을 새겼고, 무례(無禮)했고 무자비(無慈悲)했고 무도(無道)했던 어두운 시대를 야기시키며 한동안 최고권력자로 군림했었다.

우리 스스로를 위안(慰安)하기 위해 적어도 그들이 생도(生徒)시절에는 정말 나라를 위해 충성(忠誠)하는 군인이 되겠다는 굳건함이 있었겠지 라고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참 군인이 되지 않고 사조직(私組織)을 구성하여 야심을 키웠고, 틈을 타 결국은 검은 마음을 현실화 하며 무고(無故)한 피를 희생(犧牲)시키고 권력(權力)을 손아귀에 넣으며 우리를 슬프게 했다. 그렇게 잔인했던 그들이 이제 한 사람은 한 달 전에 또 한 사람은 엊그제 다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 세상에서 영원히 가고 나면 사람들은 용서(容恕)하지 못하던 것도 다 내려놓게 되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친구였던 그들이 다 갔어도 누가 누굴 아프게 했건 용서하자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아직 생기지 않는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나고 이어가며 함께하는 세상의 각별한 인연(因緣)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사는 동안 서로에게 흡족함을 주기도하고 때론 실망(失望)을 하면서 다면적(多面的)인 모습을 보이며 정(情)을 주고 받으며 공존(共存)하게 되는 것이 친구이다.

함께 많은 것을 나누며 도모(圖謀)할 때 각 자의 몫으로 주어진 삶에 선한 업적(業績)을 이루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좋은 친구라는 것을 다 안다.

무언가를 향해 탐심(貪心)이 불일 듯 일렁일 때 친구 중에 하나라도 미혹(迷惑)되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바른 길을 가자고 진심(眞心)을 담아 충고(忠告)하여 그 마음을 도려내게 하는 것이 바른 친구임을 우리는 또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에게 무슨 큰 이익(利益)을 주며 챙기는 그리 대단한 공적(功績)을 이루지는 않아도 오늘을 내일을 서로 보살펴보고 염려해주며 마음의 곁을 주고 실천하는 친구가 된다면 세상은 더 따뜻하고 더 살만 한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이르렀을 때 친구를 떠올리면 씁쓸하지 않고 욕되지 않고 수치(羞恥)스럽지 않게 건실(健實)하고 반듯하게 교류하고 올곧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온기를 느끼게 살았다면 그 연(緣)은 아름답고 선한 만남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우정이 될 것이다.

 


장성미 C플랫폼 준비위 사무국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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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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