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문체부의 '2021년도 신문잡지 이용 조사 결과', 한국ABC협회 성명 그리고 교각살우(矯角殺牛)

[신인섭 칼럼] 문체부의 '2021년도 신문잡지 이용 조사 결과', 한국ABC협회 성명 그리고 교각살우(矯角殺牛)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2.01.0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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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AB협회 15년사' 2004. 표지. 한국ABC협회 발행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2021년의 마지막 달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최대의 관심사는 폭증하는 오미크론이었을 것이다. 한 해를 보내는 12월 말 한국에서 신문 발행인에게 가장 큰 뉴스는 문체부가 발표한 <2021년도 신문잡지 이용 조사결과> 아니었을까.

2022년 호랑이의 해 첫날 동아일보는 <구독 비율 60% 영업장은 쏙 뺀 문제부의 ‘반쪽’ 열독률 조사>라는 사설을 실었다. 문체부 보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이보다 앞서 12월 초에도 동아일보에는 발행 부수 조사 관련 사설이 있었다. 조선일보와 함께 100년을 넘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두 신문의 하나인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발행 부수 조사 문제를 한 달 기간에 두 번이나 사설로 다룬다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 문제는 중요한 일임을 말한다.

신문 발행과 관련해서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신문사 사장에게 가장 실례가 되는 질문은 귀사의 신문 부수는 얼마입니까 하는 말이었다 한다. 237년의 역사를 가진 <The Times>의 나라 영국의 이야기이다. 광고의 나라 미국에서 신문 발행 부수를 공개하는 기구 Audit Bureau of Circulations ABC가 1914년에 탄생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주로 유럽에서, 이후에는 아시아에서도 인도, 말레이시아 등 전 영국 식민지 국가, 또한 1952에는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37년 뒤늦게 1989년에 이 ABC 제도가 탄생했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 ABC 창설에서 실지 부수 발표가 있기까지 일본은 10년 가까이 한국은 20년이 걸려서야 일간지 부수가 공개되었으니 신문 부수 공개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달리 보면 <사농공상>의 두 나라에서는 <사(士)> 즉 선비인 신문이 <상(商)> 즉 장사꾼인 기업=광고주의 요청에 응하기가 힘들었다고나 할까.

'전국 일간신문 유료부수 전면 공개'라는 제목의 2011년 89호 한국 ABC 협회 회보
창립 22년만에야 153개 전국 일간지를 대상으로한 '신문부수공사보고서. 2020.1-2010.12' 표지

이제는 ABC 제도가 없는 나라는 후진국이며, 표현 자유가 없는 나라로 치부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 우리는 2010년부터 시작된 거의 모든 일간(종이) 신문의 부수 공사가 10년이 되어 자리 잡힌 듯하더니 내부 고발로 문제가 생겼다. 문체부는 독자적인 조사를 통해 22년부터 정부 광고 기준에 ABC 자료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새로운 정부 광고 게재 기준 자료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다.

일의 시작을 따지자면, 정부 광고 대행을 정부가 특정 언론 조직에 독점하게 한다는 제도 자체에 있다. 잊어서 안 될 일은 1980년 집권한 신군부 세력이 제정한 언론기본법과 1981년 방송광고 판매의 독점권을 무자본 특수 정부 기관인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맡긴 지 10년도 안 되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작년 여름 일단 불발로 된 언론중재법, 그리고 1974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부터 이듬해 6월까지 계속되다가 국내, 국제 압력으로 끝난 <동아 광고사태>, 더 거슬러 올라가 1964년의 언론윤리위원회법 등도 있다. 해방 전 일본의 중국 침략 이후 언론에 일어난 일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간단히 말해서 해방 이후 한국의 언론과 광고 자유에 대한 정부 시책은 그리 반길 만한 것은 아니었다.

2021년은 UNDP가 소득 30,000 달러를 넘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지정한 해이다. <오징어게임>과 넷플릭스, 윤여정과 <미나리>, BTS와 <Butter> 및 <Permission to Dance> 등으로 “K-OOO” 하면 선진 한국을 상징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한국 ABC는 한국의 언론, 광고의 자유, 나아가서는 민주주의 제도의 상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ABC 제도는 88서울올림픽 때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기에 표현의 자유 회복과 함께 문화공보부 지원의 결정적 역할로 탄생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창립 15주년인 2004년에 출판된 <한국ABC 15년사> 화보에는 한국ABC협회 창립을 축하하는 문화공보부 장관과 미국ABC협회 방문에 참가한 연구 시찰단 4명 가운데 문공부 광고정책과 사무관의 사진이 있다.

창립기념식 최병렬 문화공보부 장관 축사 사진(좌), 미국ABC협회를 방문한 연수시찰단(우)

한국 ABC 자료를 정부광고 기준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문체부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ABC 제도란 무엇이며 누가 언제 왜 어떻게 한국에서 탄생했는가를 살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처칠이 한 말이 있다. "To improve is to change; to be perfect is to change often." 한국ABC협회가 저지른 매우 주요한 실수가 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실수란 생기게 마련이다. 실수란 고치면 된다. 다만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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