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이영자씨가 실버타운에 방문해서 체험하는 모습이 방송되었습니다. 필자 생각보다 훨씬 더 환경이 좋고, 쾌적하며, 깨끗했습니다. 이영자씨의 실버타운 체험기를 접한 해당 예능프로그램 MC들도 방송에서 “실버타운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정말 좋다”, “들어가 살고 싶다”라며 실버타운의 재발견에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실버타운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요양병원 역시 공간의 재발견이 필요한 시설입니다. 인간 평균 수명이 늘면서 한국 역시 고령화 사회에 빠르게 진입 중이며, 요양병원에 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고령자사회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어 2019년 65세 이상 고령자는 14.9%, 2025년 20.3%, 2067년 46.5%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요양병원, 생활의 공간으로 바라봐야 할 때
요양병원은 단순히 나이 든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요양하는 장소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생활 공간’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들이 보살핌 받는 환경이 실제로 환자의 건강과 치료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의 거주환경은 신체적, 심리적, 생리적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환자들이 보기에 시각적으로 심미적인 환경은 통증완화제 사용 감소, 고통 완화, 정신적 스트레스 감소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례로, 나무가 보이는 회복실에 입원한 환자일수록 회복속도가 빨랐으며, 자연풍광이 그려진 천장을 바라본 환자군이 아무 이미지도 없는 천장을 바라본 환자군보다 불안감이 낮게 나타났다는 연구결과 보고가 있습니다.
이렇듯 실내환경요소의 분위기는 환자의 불안감, 고독감, 공포감, 실망감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할 수 있는 개념 중 하나로 ‘치유환경’을 들 수 있습니다. 환경심리학자 울리치(Ulrich, 1991)는 환자의 스트레스를 감소하여 회복을 촉진시키는 물리적, 정신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주는 환경을 치유환경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치유환경은 공간 사용자가 건강하게 회복하는 데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 환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치유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가 있는데, 이중 하나인 디자인적 요소는 환자가 보다 편안하게 자신의 건강을 회복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물리적 환경, 사회적 환경, 심리적 환경 등에서 디자인을 섬세하게 바꾸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건강과 실내환경의 관계를 가늠하는 건강 건설환경 평가제도
치유환경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다 종합적인 관점으로 인간의 건강과 실내환경과의 관계를 다루는 국제적 지표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WELL Building Standard(이하 WELL)은 인간의 건강과 웰빙에 대한 증진을 목표로 만든 건강 건설환경 평가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의사, 과학자들과 건설 산업 전문가들의 7년간의 공동연구 끝에 개발되었습니다. 7개 개념(공기, 물, 영양, 빛, 건강, 안락함, 정신건강)을 통해 건설 환경이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인증⋅모니터링 하는 것이 주요 목적입니다. WELL의 7개 개념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정신건강 범주입니다. 정신건강 범주는 스트레스와 불안감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17항목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실내환경디자인을 위한 치유환경 요소를 연구한 고가로와 김인성(2020)의 연구에서 소개된 디자인 요소 중 몇 가지만 소개해보겠습니다.
※ 예시
1. 넓고 친숙하며 미적인 공간 디자인을 통해 안락함과 친근성 향상
- 천장고 (방의 크기별 적정 천장고를 확보하여 개방성과 쾌적감 증진)
- 예술품 (로비나 일정 규모 이상의 예술품을 설치하여 시각적 다양성 확보)
- 공간 친밀성 (통로 공간에 색채나 예술품 등을 활용하여 공간 인지와 길찾기 편의성 제공)
2. 실내 디자인에 자연환경을 도입하여 거주자의 정서와 심리적 건강을 지원
- 자연주의 실내환경 (화분, 실내녹화, 벽면 녹화 등을 기준 규모 이상 설치)
헨더슨 병원, 병원 조경부터 조명까지 치유 환경을 위한 시스템적 설계를 하다
환자의 치유를 돕기 위해 쾌적한 병원 환경을 조성하는 병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중 네바다주 헨더슨에 있는 헨더슨 병원(Henderson Hospital in Henderson, Nevada)은 환자에게 최적화된 치유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이는 곳입니다. 병원 입구는 풍부한 나무, 꽃 등 조경을 아름답게 꾸며 마치 호텔 입구를 연상시키는 드라이브웨이를 만들었습니다. 방문객들이 메인 로비에 들어서면 근처에 있는 엘리베이터와 대형 카페테리아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병원 뒷편에는 야외 바베큐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환자실에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대형 창문, 밝기 조절이 가능한 조명, 온도 조절 장치 및 객실의 초대형 TV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변 소음을 줄이기 위한 고성능 천장 타일 등 세심한 시스템 설계가 구성돼 있습니다.
환자에게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의료진의 가장 첫 번째 목표이나 지향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질병을 치유하는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적합한 치유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단순히 심미적이고 아름다운 병실을 꾸미는 것에 치중하기보다는, ‘치유환경 조성’이라는 전문적인 관점에서 병원 내부 곳곳을 주의깊게 계획하고 디자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 고가로⋅김인성. (2020). 노인요양병원 실내환경디자인을 위한 치유환경요소와 웰빌딩 스탠다드 인증항목 비교분석. 한국실내디자인학회 논문집, 29(1), 72-80.
- 남혜령⋅이병연, 웰빙 중심 친환경 건축인증을 위한 연구, KIEAE Journal, Vol. 16, No. 6, p.29, 2016.
- 오지영⋅박혜경. (2019). 문헌고찰을 통한 치유환경 디자인 요소의 치유효과 연구. 한국디자인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121-122.
- Interantional WELL Building Institute. WELL BUILDING STANDARD, v1 2019 addenda/ wwwwellcertified.com
- Ulrich, R. S. (1991, January). Effects of interior design on wellness: theory and recent scientific research. In Journal of Health Care Interior Design: Proceedings from the... Symposium on Health Care Interior Design. Symposium on Health Care Interior Design (Vol. 3, pp. 97-109).
- Zimring, C., Joseph, A., & Choudhary, R. (2004). The role of the physical environment in the hospital of the 21st century: A once-in-a-lifetime opportunity. Concord, CA: The Center for Health Design, 311.
※ 닥스미디어(http://docsmedia.co.kr/) 칼럼을 공유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