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다

  • 이형민
  • 승인 2022.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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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의 고찰

얼마 전 가수 보아의 친오빠 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인 권순욱씨의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권순욱씨의 암 투병 사실 자체 보다 화제가 된 것은 권순욱씨가 SNS를 통해서 밝혔던 심경 글이었습니다. 권순욱씨는 본인의 SNS를 통해 ‘의사들은 왜 그렇게 싸늘하신지 모르겠다’,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들을 면전에서 저리 편하게 하시니 도대체가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등의 글을 올렸고, 그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담당 의사의 무신경과 비인간적인 태도를 비난하는 여러 가지 의견을 온라인 상으로 표출하였습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딱딱하고 사무적이고 냉정한 의사들의 태도에 섭섭함을 표한 권순욱씨와 그의 글에 동조한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여러 가지 의료 규제들과 법적인 이유로 인간적인 감정을 배제한 채 자기방어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의 고충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황혜진, 2021. 5. 19).

의사와 환자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4차 산업혁명’ 또는 ‘디지털 변환’ 등으로 지칭되는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원격진료,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로봇 수술 등이 조금씩 실제 상황에서 구현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의료서비스는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서 증상을 얘기하고 치료 방법을 고민하고 증세의 변화를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의료서비스가 의사와 환자 간 대면 커뮤니케이션과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형성되는 인간적인 관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앞서 권순욱씨의 사례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배경에는 의사와 환자 간 단순히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닌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전문가로서 의사들이 느끼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한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와 환자의 유대감 형성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의료서비스라는 행위를 통해 생성되는 산물이자 그 자체로 의료서비스 및 마케팅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의사와 환자가 인간으로서 형성하는 유대감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Ferguson, 2002). 환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진료하는 의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인식과 의사에게 갖는 호감은 치료에 대한 환자의 순응과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개선함은 물론 환자의 만족도를 제고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의사가 환자에 대해서 느끼는 인간적인 책임감과 유대감은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하며 치료에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을 효과적으로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 의사와 환자 간 형성하는 신뢰와 이해의 감정은 전체적인 의료서비스의 질과 만족도를 동시에 제고함으로써 그 자체로 치료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Kearly, Freeman, & Heath, 2001).

의사와 환자의 관계의 역사

인류 역사상 의료 행위라는 것이 시행된 이래 의사와 환자 간 관계는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고대 이집트에 대한 문헌과 역사적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성직자와 신도 간의 관계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현대적인 의학이 발달하고 체계화하기 전이었던 당시 의사는 영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기적을 시행하는 종교적 존재로 여겨졌고, 의사는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돌보는 부모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사와 환자 간 수직적이고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Kaba & Sooriakumaran, 2007). 의학의 아버지라 칭해지는 히포크라테스가 인체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집대성했던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에서부터 실제 관찰과 이성적인 판단을 기초로 한 의료 행위라는 것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중심으로 형성, 확산되었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개념을 토대로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과거 보다 훨씬 동등하고 협력적인 형태의 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환자의 이익을 위할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를 멀리할 것이다’라는 인본주의적이고 환자중심적인 관점이 등장하게 됩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왕진을 청하는 페르시아 사절단 (출처: 루시-트리오종, 1792)
히포크라테스의 왕진을 청하는 페르시아 사절단 (출처: 루시-트리오종, 1792)

의사와 환자의 관계 형성

기술적으로 볼 때,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의사가 모든 전권을 가지고 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면 환자는 그러한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는 형식의 관계와 환자가 본인의 치료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고 의사는 그러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기본 정보만을 제공하는 형식의 관계를 양극단으로 하는 연속선상에서 형성됩니다(Goodyear-Smith & Buetow, 2001). 즉, 의사와 환자 간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 동등하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적극적이고 개방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으며 협력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형태의 관계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소비자 집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MZ세대의 경우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개인화된 서비스를 선호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에서도 보다 수평적이고 참여적인 관계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환자를 고려한 의사의 대화전달 방법

의사와 환자의 관계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입니다. 진료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의견을 구하고 의사결정과정을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환자가 인식하는 의사와의 관계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환자 지향적이고 상호협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환자 지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말 그대로 의사가 환자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환자의 입장에서 효과적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소통의 형식을 의미합니다. 환자 지향적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 제공, 환자의 환경과 선호하는 바를 빨리 알아차리는 독해력,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 상 환자의 참여 제고 등입니다(Tongue, Epps, & Forese, 2005). 상호협력적인 커뮤니케이션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호협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의사와 환자가 서로 솔직하게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치료를 위한 협력 관계를 도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정선과 최만규(2018)의 연구에 의하면, 환자 지향적 커뮤니케이션은 특히 만성질환자들에게 건강지향적인 행동을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환자가 느끼는 삶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한편 임지혜, 이기효, 백수경(2009)의 연구에서는 상호협력적 커뮤니케이션이 환자가 생각하는 의사와의 관계와 환자 만족도에 공히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이 실증적으로 규명되었습니다. 의사와 환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진료를 할 때, 어떠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어떠한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는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의 바람직한 의사소통 방법

박진과 최양호(2014)는 의사-환자 관계가 어떠한 요인들에 의해 형성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연구 결과, 소통성, 신뢰성, 충실성, 상호교환성, 공정성의 5가지 요소가 의사-환자 관계를 형성하는 주요 요인으로 규명되었습니다. 즉, 환자들은 자신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말이 잘 통하고, 담당 의사의 전문성과 실력을 믿을 수 있고, 담당 의사가 진료 서비스를 충실히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의사와의 소통이 수평적이고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며, 본인이 공정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느낄 때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내용이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쉽지 않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환자 지향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 구축이 의료서비스의 질 제고와 마케팅 경쟁력 확보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인용]

  • 박진영·최양호 (2014). 의사-환자 관계성 측정척도 개발에 관한 연구. <홍보학연구>, 18권 3호, 304-333.
  • 이정선·최만규 (2018). 의사의 환자 지향적 커뮤니케이션과 만성질환자의 삶의 질과의 관계: 건강행태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보건사회연구>, 38권 3호, 279-302.
  • 임지혜·이기효·백수경 (2009). 의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과 질, 의사-환자관계 유형에 따른 환자만족 요인. <병원경영학회지>, 14권 3호, 83-103.
  • 황혜진 (2021. 5. 19). 보아 오빠 권순욱 암투병 고백. 뉴스엔.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2105190817220410
  • Ferguson, W. J. (2002). Culture, language, and the doctor-patient relationship. Modern Culture and Physician-Patient Communication, 34(5), 353-361.
  • Goodyear-Smith, F., & Buetow, S. (2001). Power issues in the doctor-patient relationship. Health Care Analysis, 9, 449-462.
  • Kaba, R., & Sooriakuraman, P. (2007). The evolution of doctor-patient relationship. International Journal of Surgery, 5, 57-65.
  • Kearley, K. E., Freeman, G. K., & Heath, A. (2001). An exploration of the value of the personal doctor-patient relationship in general practice. British Journal of General Practice, 51, 712-718.
  • Tongue, J. R., Epps, H. R., & Forese, L. L. (2005). Communication skills for patient-oriented care: Researchp-based, easily learned techniques for medical interviews that benefit orthopedic surgeons and their parents. Journal of Bone and Joint Surgery, 87(3), 652-658.

※ 닥스미디어(http://docsmedia.co.kr/) 칼럼을 공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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