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2.0 뉴노멀 시대의 병원 : ‘의료기관의 헤리티지 마케팅’

언택트 2.0 뉴노멀 시대의 병원 : ‘의료기관의 헤리티지 마케팅’

  • 유승철
  • 승인 2022.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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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바위 그리고 '의료 연구자 허준의 집념'

몇 년 전에 가양동에 소재한 허준박물관(http://www.heojun.seoul.kr)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는 허준이 태어난 옛 양천이고, 가양동에 소재한 허가바위 일대는 허준이 『동의보감』을 저술한 장소입니다. 강서구는 이를 기리면서 1999년부터 ‘허준축제(http://www.heojunfestival.com)’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아직 못 가본 독자분들은 한번 꼭 가 볼만한 대규모 의료 축제입니다.

허준축제 광고전단 (출처: http://www.heojunfestival.com)

허준 박물관 초입에는 허준이 힘겨운 유배생활 가운데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가바위’가 있습니다. 평범한 동굴로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의료 연구자 허준의 집념’을 떠올리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안타깝게도 풍부한 인간적 스토리가 숨겨진 동굴임에도 간단한 안내 팻말이 전부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허가바위는 평범한 바위동굴이지만 그 유래를 통해 의미를 찾아냈고 또 이를 통해 한 지역의 대규모 축제를 이끌어낸 동인이 되었음을 생각하면 과거의 유산은 과거의 유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드라마 허준에서 가장 유명한 명장면을 같이 보실까요?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가 자결하고 그 몸을 허준이 해부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픽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옛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 - 헤리티지 마케팅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할까요?” 흔히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사건’이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행착오 그리고 과거의 여러가지 성공사를 통해서 우리가 현재를 딛고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동기와 힘 그리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역사학자 E.H. 카(Edward Hallett Carr)는 그의 명저인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 를 통해서 “역사의 기능은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를 더 잘 알아가는 것”이며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최근 기업은 기업의 창립이래 역사 속에서 기업의 미래를 발견하려는 시도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어 헤리티지(heritage)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유산(遺産)’을 의미합니다. ‘유산’이란 [과거로부터 남겨진 의미가 있는 흔적]입니다. 한국도 고속 산업화를 통해서 현대적인 기업의 역사가 이미 5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성이나 현대 또 LG와 같은 초국적의 글로벌 기업들이 탄생한 것은 바로 이 작은 한반도 땅입니다. 앞서 언급한 초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창업 과정과 기업을 키우는 발전 과정 가운데서 있었던 여러 도전들 그리고 어떻게 이 도전을 극복해 왔는 지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또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아자동차와 삼천리자전거의 뿌리는 기아산업으로 같다는 점을 잘 아는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1979년 학산 김철호 회장이 돌아가시면서 분리독립되기는 했지만 그 전에는 같은 기업이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2015년 이후에 기아자동차는 스포티지와 소울 등을 테마로 해서 자전거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회사라는 그 뿌리가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현재가 된 셈입니다. 물론 기아자동차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유산 발굴을 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이렇게 기업의 역사를 기업 브랜드 마케팅에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을 흔히 ‘헤리티지 마케팅(heritage marketing)’이라고 부릅니다.

기아산업이 제작한 삼천리호자전거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1stjesus&logNo=220923247452)
기아산업이 제작한 삼천리호자전거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1stjesus&logNo=220923247452)
기아자동차가 2015년 선보인 스포티지 자전거 (출처: https://news.hmgjournal.com/TALK/Story/Kia-Bicycle-Riding)
기아자동차가 2015년 선보인 스포티지 자전거 (출처: https://news.hmgjournal.com/TALK/Story/Kia-Bicycle-Riding)

병원의 헤리티지 마케팅

하지만 이렇게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운데서도 비영리 조직으로 간주되는 병원-의원 같은 경우에는 이 유산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병-의원뿐 아니라 의료 연구소와 제약회사 등을 포함한 헬스케어 조직들의 헤리티지 마케팅은 또는 헤리티지 브랜딩은 상당히 취약합니다. 우리는 과거에서 우리 병원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원은 영리적 목적과 비용적 목적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 조직이기 때문에 더 ‘병원 조직의 시작점’에 돌아가서 왜 우리가 이 조직을 만들고 또 성장시켜 왔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BACK TO THE BEGINNING(시작점으로 돌아가라)’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 조사에 의하면 서유럽 회사들의 19%가 창업주의 이름을 따서 기업명을 쓰고 있고 이런 회사들이 여타 이름의 회사보다 3%가 높은 자산 수익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창업의 정신을 돌아보게 하는 이름의 브랜딩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2019년 미국의 엠디앤더슨 암병원(MD Anderson Cancer Center)에 방문했을 때 놀란 점은 전시관에 1941년 개원 이래 초대 병원장에서 시작해서 그리고 현재 재직 중인 병원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병원장과 직원들의 사진들 그리고 그 당시 이루어진 업적과 문제점들에 대해서 정밀히 분석하고 그리고 그것을 일종의 갤러리처럼 만들어 둔 것이었습니다. 또 이런 헤리티지에 대한 자료들은 온라인 아카이브에도 세세하게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어떤 병원장 이든 잘하고 못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리고 과거의 실책과 성취로부터 미래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온라인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는 브랜딩 활동이 주는 신뢰는 막대할 것입니다.

엠디 앤더슨 병원의 초기 모습을 담은 갤러리와 관련 음성 인터뷰 (출처: https://easttexashistory.org/items/show/290)
엠디 앤더슨 병원의 초기 모습을 담은 갤러리와 관련 음성 인터뷰 (출처: https://easttexashistory.org/items/show/290)

국내 병원의 경우에는 헤리티지 마케팅 보다는 ‘과거사의 복원’과 같이 단순히 병원 역사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마케팅 활동을 멈추고 있는 현실입니다. 실례로 많은 병원들이 새로운 장비들 첨단의 신기술 그리고 유명한 의사 등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부분은 자산이 풍부한 대형 병원만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 병원이 언제 어떤 이유로 세워졌고 초대 원장님의 바램은 무엇이었는지 또 우리 병원이 소재하고 있는 커뮤니티를 얼마나 많은 봉사를 했고 그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집중하는 병원은 많지 않습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병원들이여 BACK TO THE BEGINNING(시작점으로 돌아가라)

우리가 알고 있는 초대 기업들 소위 FAANG(Facebook, Apple, Amazon, Netflix, Google)과 같은 글로벌 기술 플랫폼은 모두 시작점은 다락방이나 차고에서 출발했습니다. 열악하고 작은 환경에서 출발했지만 그들은 이제 세계를 제패하고 말았습니다. 또 시작이 미미했음을 홍보의 주요 의제로 삼기도 합니다.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출발점부터 거대한 자본과 많은 인력을 속에서 성장한 병원들도 물론 있겠지만 제한된 자원과 그리고 제한된 인력 속에서 출발한 병원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매일의 작은 역사들이 모여서 큰 미래를 만듭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의료조직 경영자들은 노트를 꺼내서 우리 병원의 역사를 반추해 보고 그리고 이 역사를 어떻게 드라마가 있는 스토리로 만들어서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변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소비자는 역사를 숫자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역사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갖출 때 진정한 ‘병원의 헤리티지 마케팅’이 가능한 것입니다. 

종합병원도 동일합니다. 병원이 개원한 연도와 초기 병원의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를 전시해 놓은 것이 헤리티지 마케팅 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병원 개원 당시의 에피소드 그때 직원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만약에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들 또 고난과 도전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들이 모여서 쌓이고 또 소비자에게 소통될 때 바로 헤리티지 마케팅이 보다 고도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병원에 관계자들이 깊이 인식을 하고 마치 ‘우리 병원의 스토리 아카이브’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정교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브랜드 전문가의 자문을 듣고 영감을 받는 것도 좋겠습니다.
 
국내에는 7만여 개의 병의원이 있지만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병원의 개수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보다 의미 있는 병원으로 여러분의 병원이 남을 수 있도록 우리 병원의 역사와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또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의학역사문화원 (출처:https://dept.snuh.org/dept/HHCC/content.do?menuId=003012)
의학역사문화원 (출처:https://dept.snuh.org/dept/HHCC/content.do?menuId=003012)

[인용]

  • Carr, E. H. (2018). What is history? Penguin UK.
  • Olson, James Stuart. “Chapter 2.” In Making Cancer History: Disease and Discovery at the University of Texas M.D. Anderson Cancer Center, 25–27, 29.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9.
  • 허준박물관, http://www.heojun.seoul.kr
  • 허준축제, http://www.heojunfestival.com

※ 닥스미디어(http://docsmedia.co.kr/) 칼럼을 공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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