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함민복 시에 나타난 광고의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함민복 시에 나타난 광고의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8.31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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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휜 껌이 다가와 할머니를 이백원에 팔고 감

- 「후보선수」 중에서 -

숙취에 젖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함민복 시인의 시집을 별생각 없이 들추다가 위의 시를 보고 피식 웃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소름 한 줄기가 등을 타고 내려갔다. 요즘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거리에서나 술집이나 식당에서 거의 막무가내로 껌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허리 휜 할머니들이 불쑥 내미는 껌들은, 껌마저 힘들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 했다. '파는 인간과 팔리는 상품'의 일체감이라 표현하기에는 서글픔과 미안함이 껌을 산 연후에도 남아 있었다. 그 미묘함을 '파는 인간과 팔리는 상품'의 도치를 통하여 나타낸 표현에 헛웃음이 가볍게 나도 의식하지 못한 새에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웃음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정말 팔린 것은 할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 뒤로 한 줄기 소름이 지나가고, 뒷골이 오싹해지기까지 하는 그런 전도(轉倒) 현상이 함민복 시인의 광고를 소재로 한 시에서는 쉽게 또 눈에 띈다.

열한 가지 특제 양념과
정성으로 여러분을 요리하겠다고
티브이 광고까지 하는
지팡이 들고, 안경 쓰고, 가늘고 검은 넥타이 MAN

-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 중에서 -

'열한 가지 특제 양념과 정성'은 '여러분'이란 소비자들을 위한 요리에 쓰는 것이었는데, 결국 요리되는 대상을 보니 소비자이다.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광고가 보여 주는 세계와 실제 세계의 구분이 허물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 광고를 전달하는 티브이는 리모컨으로 나에 의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나를 작동시키는 리모컨이 된다. 나의 지배자가 되어 버린다.

실감한다, 허구의 세계가 또 하나의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두 세계의 벽 허물기를 통해
허구와 실제의 벽 허물기 체험을 무의식에
강요하고 있는 산업사회의 무서운 꽃 광고를. 나는
보기 싫어 리모컨을 누르다 경악한다, 이미 허물어진 벽.
티브이가 리모컨이 되어 내 머리통을 작동시키고 있었구나.

- 「엑셀런트 시네마 티브이·2」 중에서 -

마침내는 이런 광고의 세계를 예찬해야 하는지, 그 앞에 절망하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반전도 넘어버린 광고가 일으키는 이 자아분열과 환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광고에 주어진 숙제이다.

아아 광고의 나라에 살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와 더불어
행복과 희망이 가득 찬
절망이 꽃피는, 광고의 나라

- 「광고의 나라」 중에서 -

함민복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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