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오바마와 트럼프가 만든 반전의 순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오바마와 트럼프가 만든 반전의 순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9.1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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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연례 백악관 기자협회 만찬에서 연설하는 오바마 (CNN 캡처)
2011년 백악관 기자단 초청 연례 만찬에서 연설하는 오바마 (CNN 캡처)
2011년 연례 백악관 기자협회 만찬에 참석한 트럼프 (CNN 캡처)
2011년 백악관 기자단 초청 연례 만찬에 참석한 트럼프 (CNN 캡처)

“이 문제가 잠잠해지는 걸 이 분만큼 기쁘게 자랑스럽게 맞이할 분은 없을 겁니다.”

2011년 4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백악관 기자단 초청 연례 만찬 행사에서 했던 연설의 한 대목이다. 언급된 ‘이 문제’는 오바마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힐러리 클린턴과의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하와이 태생이라는 오바마가 실제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의혹을 열렬 힐러리 지지자가 제기했다. 미국 선거법에 미국 영토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출마 자격이 없다고 한다. 의혹 제기자들을 지칭하는 ‘birthers’란 신조아가 생겼는데, 그들은 “버락 오바마는 하와이가 아닌 케냐에서 태어났다. 오바마는 유년 시절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냈고, 당시 미국 국적을 상실했다. 출생증명서만 공개하면 되는데 하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오바마는 하와이 주정부로부터 출생증명서를 요약한 복사본을 받아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하와이 주정부는 출생증명서를 2001년에 모두 전산화하여 원본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만들었기에 복사본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요약본이라 원본이 아니라 믿을 수 없다는 말부터 시작하여, 하와이 주정부까지 오바마가 영향을 미쳐서 위조된 사본을 만들었다, 주정부에서 쓰는 용지와 다르다는 식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나왔다. 그래도 민주당 내의 인사들은 대체로 잠잠해졌는데,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상대인 공화당의 극보수 인사들이 나섰다. 그마저도 2008년 11월에 오바마가 당선이 된 후에는 사그라졌는데, 2011년에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인사가 있었다. 첫 문장에서 언급한 ‘이 분’인데, 바로 오바마를 이어 대통령이 되는 도널드 트럼프였다.

1990년대 말부터 대통령 후보로 나설지 모른다는 말은 있었지만, 정치권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트럼프가 2011년 3월에 몇 년 동안 극우 음모론자로 취급되는 이들이나 하던 오바마 출생증명서 의혹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언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출생증명서가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불리한 내용일 것”이라며 거의 꺼져 있던 의혹의 불씨를 되살리고, 본인의 트위터 계정과 방송을 통해서 계속 맹공을 퍼부었다. 트럼프와 같이 주목 받는 인사가 쏟아내는 말들을 언론사들이 중계했고,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 주정부에 특별 요청을 해서 원본 전체를 카메라 입회하에 복사하고, 복사본을 그대로 공개했다.

당연히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2008년 요약본 복사 때와 거의 같은 소리를 내는 이들이 나타났다. 하와이 주정부에서 이미 위조했다, 선이 비뚤어졌다, 그 시대에는 별로 쓰이지 않던 용어가 보인다 등등 믿지 않으려 작정한 이들이 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트럼프는 그들의 의문을 틈틈이 중계하면서 자신이 앞장서서 출생증명서 공개를 이끌어냈다고 생색을 내며, 승리자로서 자신을 내세웠다. 그런 트럼프에 회심의 반격을 날린 게 바로 가장 윗줄에서 인용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오바마 연설의 한 토막이었다. 트럼프도 참석한 만찬에서 오바마가 연설을 이렇게 이어갔다.

“이제 미스터 트럼프는 마침내 더 중요한 이슈들에 집중할 수 있으실 테니까요.”

여기서 한 호흡을 쉬면서 주로 기자들이 대부분인 청중들의 호기심을 최대로 유발시켰다. 오바마가 생각하는 트럼프가 주력할 일들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달에 간 게 가짜인가? 로스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비기와 투팍은 어디에 있는가? 같은 문제들요.”

아폴로 11호를 타고 간 닐 암스트롱의 최초 달 착륙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부터 시작하여 거짓이라는 얘기가 음모론자들의 단골 메뉴이다. 미국 뉴멕시코 주의 군 기지인 로스웰에 떨어졌다는 UFO와 외계인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총 맞고 사망한 랩퍼들인 비기와 투팍이 사실은 어딘가 살아있다는 얘기도 엘비스 프레슬리 생존설처럼 떠돈다. 그런 세간의 음모론자들이나 떠드는 것들을 가지고 나오는 인물로 공개석상에서 트럼프에게 망신을 준 유명한 연설이다. 트럼프가 집중할 중요한 일들이 있다고 하며 잠깐 포즈 후의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세간의 속설로는 그때의 모욕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그 역시 말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름의 반전이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I know that he's taken some flak lately, but no one is happier, no one is prouder to put this birth certificate issue to rest, and that's because he can finally get back to focusing on the issues that matter, like did we fake the moon landing? What really happened in Roswell? And where are Biggie and Tupac?" (인용한 연설 토막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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