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맞는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맞는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11.0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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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인디아에서 선거를 치르면 워낙 나라가 넓고 인구도 많아 오지의 표들이 개표장으로 모이기까지 수일이 걸려서 정치 혼란을 가중시킨다며 개탄하며,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우월함을 바닥에 깔고 말하는 미국 언론인을 1990년대에 본 기억이 있다. 누구에게 투표했는지가 불분명한 용지를 두고 벌어졌던 2000년 미국 대선에서의 플로리다 재검표와 그마저도 동원된 방해꾼들이 들이닥치면서 중단되어버린 소동이 미국에서 비슷하게 다시 일어나며, 정치 선진국 미국의 이미지는 흐려졌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부터 분열은 미국 정치에서 아주 심각한 이슈도 대두되었다. 퓨리서치(Pew Research)의 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중 중도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의 비율은 계속 줄고 있다. 자녀가 지지 정당이 다른 이를 배우자 후보로 데리고 와서 소개할 때, 적극적으로 반대하겠다는 이들의 비율이 지난 40년간에 4배 이상 드라마틱하게 뛰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소득, 곧 빈부 차이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는 건 이제 별다른 뉴스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출처 퓨리서치

논란을 만들지 않으면서 대화를 열 수 있는 소재로 ‘건강, 날씨, 자녀’를 미국인들은 흔히 들었다. 그런데 이제 건강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느새 백신을 맞혀야 하는가 여부를 놓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자기는 백신을 맞지 않고, 자녀들에게도 맞히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미국인을 봤다. 코로나19로는 마스크 착용과 봉쇄 조치 등을 두고 양극단이 맞붙었다. 기후이상에 대해서도 바이든이 당선되어 대통령 업무를 시작하는 첫날에 파리기후협약에 다시 들겠다고 했다. 기후이상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영향이 얼마나 되느냐를 두고 대립하는 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자녀 얘기도 교육과 관련해서도 사사건건 갈등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흐른다. 특히 미국에서는 자칫 입시에서의 특정집단에 대한 적극적 우대정책을 의미하는 ‘affirmative action’으로 연결되면 격론이 벌어지곤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원칙도 쉽사리 논란에 휩싸이는 결과를 낳곤 한다. 미국 대선 다음날인 11월 4일에 의류 브랜드인 갭(Gap)이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날렸다.

‘The one thing we know, is that together, we can move forward(확실한 건 함께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빨간 색과 파란 색으로 나뉜 갭의 후드티를 보이며 이제는 단합해야 한다는 너무나 뻔한 말을 했다. 그런데 트윗을 올리자마자 ‘지금이 그런 말을 할 때냐’라는 댓글 몰매를 맞고, 황급하게 트윗을 지웠다. 나름 시의적절하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것 같은데, 날카로워진 미국인들, 특히 양측으로 갈라진 이들의 신경을 제대로 거슬렸다.

얼마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인사가 주한 중국대사와의 만찬 자리에서 ‘같이 갑시다’라는 건배사를 했다고 한 신문에서 비판적인 기사를 낸 적이 있다. ‘같이 갑시다’가 ‘We go together’라는 영어와 함께 한국과 미국의 동맹을 상징하는 구호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란다. 약간 생떼같은 면이 있는 기사였지만, 어쨌든 합당한 말이라도 때와 장소를 맞춰서 해야 한다. 잘못하면 이상한 부메랑의 반전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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