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성인(聖人)은 어떻게 생겼나?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성인(聖人)은 어떻게 생겼나?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12.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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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색 피부였죠”.

“창백했어요”.

강력 사건의 증인들에게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물어서 몽타주라는 것을 그린다. 그런데 사람들의 묘사가 완전히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실례를 활용한 유명한 광고도 있었다. 도브(Dove)의 ‘리얼 뷰티(Real Beauty)’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왔던 ‘리얼 스케치’이다. 잘 알려진 대로 언뜻 본 용의자도 아니고 평소에 자주 보는 친구가 묘사한 모습과, 거울로 하루에도 수십 번은 보았을 자신이 스스로 표현하는 용모가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그러니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부색을 두고 목격자(?)들의 증언이 저렇게 다를 수도 있다.

“검은색 곱슬머리였어요”.

“고운 금발이었어요”.

“히피같이 생겼죠”.

이제 머리 모양, 헤어스타일로 질문이 넘어왔다. 여기서도 역시나 완전히 다르다. 어째 색깔이 검은색과 금발로 헷갈릴 수가 있단 말인가. ‘곱슬머리’와 ‘고운’이라는 표현에서 상당히 정확하게 본 느낌이 있는데, 아마도 둘이 같은 인물을 본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한 명은 히피를 언급했다. 머리가 길었다고 얘기하려는 것 같다.

“유대인이에요”.

“나같이 흑인이었어요”.

인종도 누군가의 외모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미국을 비롯해서 중남미와 같은 다인종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인종을 들어서 누군가를 묘사하는 건 한편으로 위험하다. 선입견, 곧 스테레오타입이 개입하여 본래의 이미지를 어그러뜨릴 수 있다. 게다가 같은 인종 안에서도 생김새는 하나의 틀 안에 넣을 수 없다. 예전 뉴욕에서의 대학원 시절에 백인 친구들 셋과 한 학기 내내 그룹 프로젝트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다양하게 모여서 좋네. 아이리시(Irish), 이탈리언(Italian), 유대인(Jewish), 아시안(Asian)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한 친구가 말했다. 백인이라는 한 묶음 속에서도 나름 다양했던 것이다. 어느 날 한 멤버가 유대인들의 납작모자 같은 키파(kippah)를 쓰고 왔다. 유대인 축일이었는지, 가족 행사가 있는지 예배에 간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이탈리언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였다. 유대인의 스펙트럼은 넓다. 콘스탄틴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보면 주인공이 유대인인지 아닌지 독일군들이 헷갈려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에티오피아 유대인은 아마도 흑인으로 먼저 분류하는 이들이 많을 거다.

사람의 외모를 두고 위에서 언급한 말들은 미국 디트로이트미술관 광고에 나온 예수(Jesus)가 어떻게 생겼냐는 물음에 대한 미국인들의 응답 중 일부이다. 제각기 그림에서 보았거나 자신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예수의 모습을 두고 저렇게 응답했다. 그들 대답 뒤에 광고의 핵심카피가 뜬다.

"아무도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죠. 미술관으로 오셔서 예수님을 보세요. 마치 렘브란트가 보았던 것처럼"

예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동시대에 남긴 그림은 아직까지 발견된 건 없다. 이후 예술가들의 그림만이 있을 뿐이다. 자화상을 비롯한 초상화로 유명한 렘브란트라면 실제의 예수에 가깝게 그렸을 것 같지 않은가. 상상 속의 예수와 얼마나 비슷할지 미술관으로 만나러 가고 싶어진다. 종교 믿음을 떠나 독자 여러분들 마음속의 성인(聖人)을 그려보고 만나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란다. 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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