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세계에서 제일 키 큰 난쟁이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세계에서 제일 키 큰 난쟁이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11.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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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틴 레스토랑 (출처 www.nerdstravel.com)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잘 알려진 것처럼 스페인 내전의 상당 기간을 마드리드에서 머물렀다. 그때 들었던 얘기와 경험을 가지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쓰기도 했고, 유명한 여성 작가이자 기자인 겔혼(Martha Gellhorn)을 만나 함께 중국에 가서 장제스와 쑹메이링 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유명인이 들른 여느 식당에서 그 사실을 사진이나 서명을 걸어놓고 알리듯이 마드리드에서 그가 단골로 들렸던 식당도 그런가 보다. 그 식당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자세히 묘사되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문학 순례기를 옮긴 책 『작가님, 어디 살아요?』에 그 얘기가 나온다.

제이크와 브렛은 식당에 들어가-헤밍웨이 자신이 자주 그랬듯이- 특식인 새끼 돼지 구이를 먹으며 리오하 알타Riojota Alta 몇 병을 마셨다. 보틴은 이것을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만큼의 세련됨을 보이지는 못한다. 앞 유리에 헤밍웨이 사진과 식당을 언급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문구가 입혀져 있으니 말이다.

‘제이크’와 ‘브렛’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주인공들이다. 위의 필자가 그렇게 유명인이 왔다갔다는 사실을 홍보 수단으로 삼는 걸 세련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반전을 꾀하며 홍보하던 식당이 바로 보틴 근처에 있었다. 위의 문장에 이어 『작가님, 어디 살아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근처 식당의 한 주인은 보틴과 차별화할 목적이었는지 입구 위에 커다란 표지판을 걸어놓았다. "헤밍웨이는 우리 식당에서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서울에서도 비슷하게 차별화하려던 집을 본 적이 있다. '방송 한 번도 방영 안 된 집'이라고 나름 라임도 맞춰서 광고를 한 집이 있었다. 사람들 말을 들으니 그런 집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요즘 그런 집들 찾기가 힘들다. 위의 보틴 식당 근처에 있던 집을 얘기하면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위의 『작가님, 어디 살아요?』에 실린 글은 2011년 6월에 발표되었다-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차별화 효과란 게 별로 없었나 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들과 시대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차별화를 해야 한다. 대부분의 식당들이 방송에 노출되길 원하고, 그것을 알리려 노력하는 가운데 방송을 타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자체는 매우 독특한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일종의 반전이다. 헤밍웨이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식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둘 다 일시적으로 관심을 끌고 화젯거리가 될 수는 있으나 그 효력이 오래갈 수 없다. 잠깐 보면서 배짱이나 줏대가 있다거나, 아니면 픽하고 웃고 지날 뿐이다. 방송에 나가거나 헤밍웨이가 들렀던 곳을 확인하고 같은 방식으로 해볼까 하는 것은 요즘 시대의 근본적 욕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차별화는 그런 욕구와 선이 닿는 선에서 찾아야 한다. '가장 키 큰 난쟁이' 류의 표현과 마찬가지다.

The "Tallest Midget" is when someone or something is the best at something, but that something isn't anything special. ('가장 키 큰 난쟁이'란 어느 부분에서 가장 뛰어난 데, 그게 별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바로 위는 'Urban Dictionary'에 나온 뜻풀이였고, 중학 때 즐겨 본 <월간 영어>란 잡지에서는 이런 내용의 농담도 실렸던 기억이 있다.

엄마: 존, 너는 도대체 뭐가 되려고 공부를 안 하니?

존: 저는 난쟁이로 서커스단에서 일할 거예요.

엄마: 넌 난쟁이가 되기에는 너무 크잖아.

존: 그게 바로 제가 노리는 거예요. '세계에서 제일 큰 난쟁이'가 되는 거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스포츠 기자인 프랭크 디포드(Frank Deford)의 걸작선도 이 표현을 제목에 달고 나왔다. 디포드 특유의 겸손이 섞이면서 톡 쏘는 기사들을 모은 책이다. 스스로 낮추면서 스포츠 기사를 문학 작품의 반열까지 올린 반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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