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월드비전이 만든 반전 효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월드비전이 만든 반전 효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10.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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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은 이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아니에요, 저는 법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입니다. 너무 약해서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해요.”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이가 맥락이 비슷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우리 같은 단체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럴 정도로 인권 의식이 사회에 자리를 잡고, 인권을 침해하는 일들이 없어져서, 굳이 인권단체가 있을 필요가 없는 날이 와야 합니다.”

국내외 불우한 사람들과 지역 사회를 돕는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후원금을 모으기 위한 광고를 꽤 한다. 힘든 처지에 놓인 상황을 보여주며 눈시울을 뜨겁게 해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 후원금을 보내게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국가를 비롯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여 도움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우한 이들이 없는 사회가 되는 게 최선이다.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가치를 입증하는 역설적인 단체들이 있다. 없어졌을 때 가치를 최대한 보여주는 역설에 주목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한 단체가 있다.

베트남 남부 산간 지역의 소수 민족이 사는 마을에서 1998년부터 월드비전이 자립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식수 시설을 설치하여 아주 기본적인 생존 방편을 마련했다. 매일 강에서 물을 길어오다가 집안에 우물을 파도록 했다. 주민들에게 다른 일거리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수익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8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소규모 자영업 훈련을 실시하고, 소액 대출을 알선했다. 노동조합도 결성하여 서로 도울 수 있는 여건도 조성했다. 교수법 교육 과정을 열어서 교사들이 이수케 했고, 아이들 대상으로 아동 권리 교육도 하고, 함께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아동클럽도 160개 넘게 개설하여 운영했다. 숫자로 나타난 성과를 그렇게 20년 이 지나니까 월드비전이 그 마을 있을 필요가 없게 되어 떠나게 된 현실이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 얘기를 전하는 영상의 마지막에 이런 자막이 뜬다.

월드비전이 생각하는 진정한 후원은 후원이 끝나게 하는 것입니다.

같은 곳에서 또 다른 반전을 담아서 집행한 광고가 있다. 1980년대 미국의 어느 시트콤에서 입양된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이렇게 자랑하는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너희 부모님들은 다른 대안 없이 너희를 낳으셨지. 나는 엄마, 아빠한테 선택을 받았어. 다른 친구들 많았지만, 그 중에서 나를 선택한 거라고.” 막연히 안쓰럽게 입양아들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주는 말이었다. 더 적극적인 선택이라면 입양 대상 아이가 부모를 고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걸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고, 영상으로도 만들었다.

“당신이 보낸 사진 한 장, 아이의 첫 번째 선택이 됩니다.”

후원자들이 사진을 보내고, 대상 아이들이 사진을 보고 자신을 후원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월드비전의 ‘Chosen’ 캠페인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서 선택을 할 여지도 없었던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선물’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직접 가구를 조립하는 노동을 함으로써 가구에 대한 애착이 더욱 생긴다는 ‘이케아 효과’처럼 사진을 보고, 그 중에서 선택을 하며 후원자와 유대감, 곧 ‘engagement’가 강하게 형성될 수 있다. 기존의 방식을 반전시킨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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