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헨리 포드의 숨겨진 반전 인생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헨리 포드의 숨겨진 반전 인생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08.18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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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의 측근으로 집사, 보디가드, 해결사와 같은 역할을 맡아온 우리로 치면 가신(家臣)이랄 수 있는 해리 베넷(Harry Bennet)이란 이가 있었다. 해군 병사로 뉴욕 거리에서 싸움질하던 그를 헨리 포드가 직접 면담하고 채용했다. 그리고 30여 년간 그의 옆에 별다른 공식 직함은 없었으나, 상대에게 완력을 보이며 위협하거나, 지저분하게 일을 해결해야 할 때 활용했다. 헨리 포드가 세상을 뜬 4년 후인 1951년에 해리 베넷이 책을 냈다. 사진 속의 필자가 읽은 책은 2015년에 당시 다니던 현대차그룹 자료실에서 빌렸다. 1987년 판인데,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책 옆면에는 한자로 '起亞經濟硏究所'라는 직인이 찍혀 있다. 1998년에 기아차가 현대차그룹에 합병될 때 함께 왔던 자산이었다.

헨리 포드란 인물이 20세기 최고의 산업자본가이자 기술자임에는 누구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개인으로 보면 그는 너무나도 괴팍하고,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많다. 거의 청교도 수준의 도덕성을 강조하던 이가 해리 베넷 같은 싸움꾼, 건달을 직접 채용하고, 옆에 두고 최측근으로 중용했던 것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즉흥적이고 일관성 없는 모습을 수시로 보여준다. 책에 나타난 일화 하나를 보자.

1931년쯤 헨리 포드는 대형 승용차에 주로 쓰이는 V형 8기통과 직렬(I형) 6기통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관련한 기밀 엄수를 얼마나 강력하게 시행했는지, 공장의 최고책임자가 크라이슬러의 창립자와 엔진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사실이면 바로 해고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해리 베넷에게 누구라도 엔진 관련해 바깥에 어떤 얘기라도 하면 즉시 목을 자르라고 했다. 해리 베넷의 역할이 그런 거였다. 해고하고는 별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게 침묵시키는 등의 일을 했다. 워낙 기술과는 관련이 없기도 했지만, 포드가 심하게 몰아쳐서 해리 베넷은 엔진에 관해서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구성 삼아 보기라도 하라는 권유조차 뿌리쳤단다. 그런 어느 날 GM의 대표인 알프레드 슬로언(Alfred Sloan)이 GM의 중역 몇 명과 포드 공장에 왔다가 헨리 포드의 방에 들렀다. 잠시 환담하더니, 포드가 GM 일행을 끌고 엔진개발실로 가서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던 두 엔진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더란다.

비슷한 경우로 한국에서 볼멘소리하는 걸 들은 적 있다. 인사를 담당하던 이였는데, 외국인 인재를 스카우트하라는 명을 받았다. 최고의 인재를 뽑으라고 했지만, 영입 대상자의 연봉 상한선이 있었다. 몇몇 좋은 인재들이 있었지만, 연봉 수준이 그들이 원하는 데 미치지 못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 수차 인사 담당 임원을 통하여 연봉 수준을 높이거나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별반 소용이 없었다. 연봉 가이드라인에 맞는 인사들은 인사팀과 최고경영층에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시간만 보내고 적합한 인재 영입에 실패했고, 일 처리를 못 했다고 질책을 받았다. 낙담하던 차에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서 해외 인재를 뽑았다고 했다. 자신이 선발한 인재를 소개하며 대표이사에게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 소리 들었다. 나중에 보니 그 영입 인사의 연봉은 원래의 가이드라인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다른 이들, 특히 자기 아랫사람들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면서, 어겼을 경우 무자비한 필벌 원칙을 적용하면서 자신은 그런 기준에 예외로 두는 이들이 많다. 그게 심해지면 모든 것에 자신은 옳다는 무오류의 오류에 빠진다. 귀에 달게 붙는 소리만 듣고, 쓴소리하는 사람에는 귀를 닫고, 가능하다면 해리 베넷 같은 인물을 이용하여 물리적인 탄압까지 일삼는다. 헨리 포드는 '역사는 허풍이다'라고까지 하면서 역사적 사실이나 그에 기반한 경고까지 물리치며 유대인 박해와 히틀러 일당의 나치 독일을 찬양하는 데 앞장섰다.

독실한 성공회 신자를 자부하며 포드는 노동자들도 자신과 같이 경건하며 독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브라질에 고무농장을 지었을 때는 노동자들의 성병 여부까지 정기적으로 검사하곤 했다. 지난 주 글에서 포드와 교육 제도를 가지고 토론을 한 소년 이야기를 했다. 그 소년은 포드가 그의 비서 중 한 명이었던 내연녀에게서 낳은 아들이라고 한다. 실제 포드가 그 소년의 엄마인 정부와 30년 넘게 내연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게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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