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한글PR" 광고를 영어로 하는 방법 - 정주영 회장의 “해 봤어”

[신인섭 칼럼] "한글PR" 광고를 영어로 하는 방법 - 정주영 회장의 “해 봤어”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0.10.07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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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유 한글광고
호남정유 한글광고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 지금 광고하는 사람들에게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물으면 웃을 것이다. 상식이니까. 한국에 서울 카피라이터즈 클럽, 영어로 Seoul Copywriters Club (SCC)이 생긴 것은 1976년이었으니 45년 전이었다. 그 때 카피라이터란 말은 생소했다. 그래 그 말은 복사기 전문가라는 뜻인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내가 초대 회장이었고 처음으로 <광고 카피라이팅>이란 책을 출판한 일도 있었다.

1978년에 럭키그룹 광고를 통합 대행하는 하우스 에이전시 희성산업(지금의 HS Ad)이 탄생했고, 나는 광고 담당 이사로 있었다. 건설, 수출이 나라의 살 길이라던 무렵이라 주로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주로 비즈니스지에 광고를 하게 되었다. 영어로 광고를 하자니 영어 원어민, 가능하면 광고 전문 카피라어터가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인을 채용하자는 말이 나오니까 "당신 영어 잘 하지 않나 왜 미국인 채용이 필요한가"라는 말이 나왔다. 그냥 웃어 버린 일이 있다. 광고 카피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특히 한국 사람이 영어로 광고를 쓴다는 것은 거의 금물(禁物)이다. 영어 뿐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이든 모국어 외에 외국어로 광고 카피를 쓴다는 것은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니다.

1969.6.3 (출처 GS칼텍스 미디어허브)

나는 희성산업에 가기 전 1970년 호남정유(GS 칼텍스)에 있었다. 1969년에 여수 공장이 완공된 호남정유는 한미합작회사로서 상표에도 CALTEX 별이 나와 있다. 합작회사란 이미지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는데, 한국에서 한국인 소비자를 상대로 장사하기 때문에 한국 나아가서는 한국 문화를 이해한다는 한국화가 필요했다. TIME 잡지는 70년대 초에 한 달에 한 번씩 한국판에만 광고를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당연히 광고료는 쌌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포함해 아마 2-3만부의 독자를 대상으로 영문광고를 하자는 생각이 났다.

문제가 생겼다. 누가 광고를 쓸 것인가? 호남정유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은 꽤 많았다. 다만 나는 그들이 광고 카피와는 거리가 먼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경부고속도로를 우리 손으로 만드는데 앞장 선 정주영 회자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봐, 해 봤어?였다. 80년대에 나온 영어 말 "CAN DO" 정신이랄까.

때마침 9월이었고,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다. 그래서 한글 광고를 한국판 TIME 지에 싣기로 했다. 아이디어는 내가 내고 애벌 카피도 내가 썼다. 다만 디자인은 미국인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헤드라인이 문제였는데 그림 하나가 천 마디의 말을 한다는 영어를 뒤집는다는 내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물론 최종 카피는 원어민에게 맡겼다. “ONE WORD IS WORTH A THOUSAND PICTURES"가 헤드라인이 되었다. 이 광고가 나간 뒤 회사 미국인 임원이 불러서 갔더니 그 부인이 이 광고를 보고 칭찬하더라는 말이었다. 아마도 서울에 나와 있는 미국 부인 모임에서 이 광고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한문 글자가 바탕에 깔린 “한글”이 지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한 가지 내가 저지른 실수가 있었는데 그 한문 문구를 훈민정음에서 따오도록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 광고는 시내에서도 작은 화제거리가 됐었다.

아이디어란 수두룩하게 떠돌아 다닌다. 그런데 그것을 잡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한국 경제를 일으킨 여러 주요 기업인 가운데 정주영이란 분 만큼 “해 봤어” 정신에 투철한 분은 드물 것이다. (소 5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지나 이북으로 간 분도 “정주영”이란 분이었다.)

1973년 10월 29일자 한국판 TIME지에 한미합작회사 호남정유의 기업PR “한글” 광고는 정회장의 “이봐, 해봤어”란 말에서 얻은 힌트에서 시작되었다. 거의 반세기 전의 옛 이야기가 되었다.

 


신인섭 (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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