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광고제] "동아일보 광고사태와 2 줄, 2 달러 광고의 힘" 신인섭

[부산국제광고제] "동아일보 광고사태와 2 줄, 2 달러 광고의 힘" 신인섭

  • 채성숙 기자
  • 승인 2020.11.14 0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부산국제광고제는 온택트 페스티벌로 진행됐다. 온라인 개최라는 부득이한 사유로 전년 대비 전체 컨퍼런스의 수는 줄었으나,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리더들로부터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매드타임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광고 산업의 미래에 대해 논하고, 광고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폭넓은 시각으로 조망하기 위해 부산국제광고제 컨퍼런스 프로그램을 연재한다.

1974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동아일보에 이변이 일어났다. 이 날 1면에는 "동아일보 광고 무더기 해약 중시. 새 수법의 언론탄압으로 규정"이라는 커다란 기사가 실렸다. 동아일보에 기업이 광고를 내지 못하게 해서 목을 조이려는 술책이었다. 이른바 "동아광고사태"가 시작되었다. 27일이 되자 미국 프리덤 하우스의 "광고해약은 정부 입김"이라는 반응과 함께 이 사건은 하룻밤에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12월 30일 김인호 광고국장은 자필로 쓴 개인, 단체, 정당의 격려, 협찬광고 지원을 요청하는 박스 광고를 게재했다. 그러자 새 해 1975년 1월 1일" 언론자유수호격려(言論自由守護激勵)" 광고가 처음으로 게재되었다. 22명의 광고인데 익명 재수생의 1천원으로부터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의 5만원이 있었다. 

모두 두 줄인 광고로서 나는 이 광고를 “두 줄 2달러 광고”라고 부른다.

1월 15일이 되자 크고 작은 격려광고가 2면에서 5면까지 신문 8면중 4개면 광고란에 게재되었으며 5월 말까지 10,352건이 되었다

“백지광고“는 끝났다. 그것을 꾸민 정권은 사라졌다. 이 사건 46년 뒤인 2020년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함께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최초의 한국 신문이 되었다. “두 줄 2달러 광고“가 얼마나 언론자유에 힘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역사가 대답할 것이다.

부산국제광고제 홈페이지 : http://www.adstars.org/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