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바람이 불면 돈을 버는 이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바람이 불면 돈을 버는 이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9.2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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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500원짜리 신문에 무슨 가치 있는 정보가 있겠어요.”

2000년대 초반에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라는 친구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어느 신문을 보느냐’라는 질문에 신문 따위는 보지 않는다면서 저런 말을 붙였다. 그때도 신문을 필두로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주식을 업으로 삼아서 그런가, 금액 크기를 가지고 정보의 가치를 재단하는 말은 천민자본주의에 더하여 그의 애널리스트로서의 능력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기사가 아닌 소수의 고객에게 제공하는 자신의 분석과 예측을 담은 보고서의 가치를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었으나, 모두가 보는 것에서 새롭고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는 통찰력, 곧 ‘insight’를 그에게서 기대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몇 명 조사한 거예요?”

소비자들이 전자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점들을 원하며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 결과를 요약하여 설명하고, 그로부터 우리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자 광고주가 던진 질문이었다.

“정량조사가 아닌 정성조사로 집단심층면접 8그룹을 했고요, 네 가구를 방문해서 관찰조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광고주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질문들을 연신 쏟아냈다.

‘한 그룹이 몇 명이냐? 8명이면 가구까지 합쳐봤자 70명 조사했네. 그중에 좋다고 한 사람이 몇 명이냐? 몇 퍼센트냐? 숫자가 의미가 있는 거야?’

어떤 방식의 조사를 했는지 서두에서 얘기했는데도, 계속 이런 질문을 하고, 조사 자체를 깔아뭉개는 듯 이야기를 해서, 상당히 흥분해서 대들 듯이 광고주에게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5년 이상 전자 업종을 중심으로 소비자 연구를 해온 사람입니다. 숫자 이상으로 소비자의 내면을 읽고,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표를 계속하라고 했다.

 

'데이터가 정말 크게, big 해지는 건 사람의 머리 속에서이다'.

위의 광고주와 비슷하게 데이터의 크기를 따지는 이들이 꽤 많았다. ‘빅데이터’가 마케팅의 유행어처럼 떠오르자, 더욱 데이터의 크기를 거론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들을 겨냥해서 바로 위의 말을 했다. 한때 어카운트 플래닝(Account Planning)을 담당하던 우리 팀의 비공식 명칭을 ‘3I Team’이라고 붙였었다. ‘Information-Intelligence-Insight’를 표방한 것이었다. 앞머리의 애널리스트가 경멸조로 표현한 당시 500원짜리 신문에 실린 기사는 information이다. 그런 기사들을 특정한 기준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축적하거나 다른 것들과 연결해보면 그 자체로 intelligence가 된다. 거기서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문제를 정의하고, 과제를 설정하며 해결 방향을 끄집어내는데, 그게 바로 insight이다.

ⓒukiyoe-japan

“바람이 불면 통나무 장수가 돈을 번다”

무슨 말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 이런 일본 속담을 들었다. 바람이 불면 모래 먼지가 일어난다. 모래가 눈으로 들어가서 눈을 상하는 사람이 생기고, 심해지면 시각장애인이 된다. 시각장애인은 일본의 현악기인 샤미센 연주자로 주로 생계를 꾸렸다. 시각장애인이 많아지면, 그들이 사용하는 샤미센 수요가 늘어난다. 샤미센의 재료는 고양이 가죽이다. 가죽을 구하기 위하여 고양이를 많이 잡으니 고양이가 줄어든다. 고양이가 줄어드니까 쥐들이 마구 번식한다. 쥐들은 나무 통을 갉아먹는다. 갉아먹은 나무 통을 대체하려 통이 잘 팔리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통나무 장수가 돈을 번다는 얘기다.

누구나 바람이 부는 걸 느낄 수 있다. 거기서 통나무 장수의 번창까지 이어나가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견미지저(見微知著)’란 말이 있다. 뭔가 미세한 조짐만을 보고(見微) 나아갈 방향이나 결과를 알아차린다(知著)는 뜻이다. 마케팅을 한다는 이들이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이며, 성공적인 반전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거액의 컨설팅료나 조사비를 들여서 정보라고 얻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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