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里仁〕 허망하게 가버린 이들을 기리며

〔카페★里仁〕 허망하게 가버린 이들을 기리며

  • 장성미 칼럼리스트
  • 승인 2022.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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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汝父母喜(생여부모희), 널 낳아 부모들 기뻤었는데

死汝父母傷(사여부모상). 네 죽음 부모의 아픔이 돼버렸구나

我行豈有虧(아행기유휴), 내가 어떤 잘못 저질렀기에

汝命何不長(여명하부장). 너의 목숨 어찌 이리도 짧단말인가

鴉雛春滿窠(아추춘만과), 어린 까마귀 봄날 둥지에 그득하고

蜂子夏滿房(봉자하만방). 벌은 여름날 저들 집에 가득한데

毒螫與惡噪(독석여악조), 독에 쏘이며 악하고 시끄러운 소리에

所生遂飛揚(소생수비양). 네 생명이 끝내 날아 가버렸구나

理固不可詰(이고불가힐), 그 연유(緣由)는 따지지도 못하고

泣淚向蒼蒼(읍루향창창). 푸르고 푸른 하늘 바라보니 눈물만 하염없구나

(〈戊子三月二十一日殤小女稱稱 어린 딸을 잃고서〉/매요신梅堯臣 )

가을밤 신선한 공기가 편안히 내려앉고 축제같은 분위기 무르익어가며 청춘들이 몰려들던 거리에서 상상(想像)도 못한 어느 전쟁터에서나 있을법한 참담한 정경(情景)이 제대로 손쓸 틈도 없이 펼쳐졌다.

그 밤이 영화의 한 장면(場面)이었다면 허구(虛構)이기에 보아 넘길 수 있었을 터이었건만……

생명의 시간을 얻기 위한 ‘히스기야’의 간절했던 기도처럼 태양이 몇 도만 물러서는 기적의 증거를 그날 얻을 수 있었다면 지금도 안심하고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얼마나 평화로운 거리로 존재하고 있을까……

이제는 어떻게 하여도 돌이킬 수 없이 그날이 가버렸다! 정해진 국가의 대대적인 애도(哀悼) 기간도 끝났다. 그러나 남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또 그 자리에서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접한 우리들에게는 아프고 안타까운 눈물과 상처가 여전히 가시지 못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많은 의견이 쏟아지고 조사하고 따져 묻고 사후(事後) 수습하기에 급급한 형국이다. 야무지게 마음을 합하여 챙겨서 철저하게 진상(眞相)이 밝혀진다 해도 남겨진 가족들의 한(恨)과 슬픔은 감(減)해지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목숨이 아차 하는 순간 삽시간에 현실에서 덩그렇게 사라졌다. 이런 참담한 현실을 목도(目睹)하면서도 상식(常識) 밖의 사람들은 다시 저들의 야욕(野慾)과 음흉(陰凶)한 목적을 달성하려 간교(奸巧)하고 무책임하고 잔인(殘忍)한 수단을 있는 대로 동원하며 장난질을 치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이 사태(事態)에 대하여 지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참담한 장(場)이 형성된 책임에 대하여 누가 누구를 탓 할 것인가?

거시적(巨視的) 관점에서 그 참상에 대하여 국가와 공직자에게 기본적 책임을 엄중하고 분명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가려지고 벌(罰)을 주고 일단락을 짓고 다 마무리 된다고 깨끗이 끝이 나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날 왜…’라며 지금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일 시간이 아니다. 꿈에도 예기치 못한 끔찍한 고통의 현실이 유발하게 된 우리의 인식을 진솔하게 돌아보며 평소에 다 같이 안전이란 문제를 무심히 대하던 이 사회가 집단적으로 반성해야 할 시간을 정중하게 가져야 한다.

제발 이 슬픔 앞에서 이 무리 저 무리가 떼를 지어 나누어 서서 으르렁대는 어리석은 짓으로 국가의 에너지를 소멸시키며 낭비하지 말자.

무슨 일이 발생하기만 하면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무리를 이루고 갈려 서로 상대를 탓하는 깊은 병을 이제는 모두가 함께 치료받자.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장성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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