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언제 철이 드는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언제 철이 드는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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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초기에 유학 온 학생들을 돕는 세션에 참가했다. 대화법이나 프레젠테이션 방법과 실습을 하는 프로그램을 커뮤니케이션 전공 교수들이 운영했다. 코스의 마지막에 프로그램 마친 것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길을 격려하는 일종의 수료식 비슷한 게 식사와 함께하는 소규모 파티로 열렸다. 프로그램의 최고책임자였던 기품 넘치게 아름다운 50세가량의 여성 교수가 내 옆에 앉았다. 미국식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은 유머라면서 괜한 자부심을 담아서 그녀가 얘기했다. 건성으로 대답하며, 줄 끝이 바닥에 쓸리고 있는 풍선을 살짝 들어 올리자,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걸로 보였는지 그녀가 풍선을 가지고 가도 된다며 물었다.

“집에 아기가 있나요?”

“네, 있어요.”

그녀가 과도하게 놀랍고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뭔가 얘기하려는 것을 앞질러 말했다.

“23세 먹은 아기가 있어요.”

우아함의 대명사이던 그녀의 입에서 ‘푸하’하고 웃음과 재채기의 중간 소리가 나왔다. 입속의 음식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막고, 연신 기침하면서 품위를 찾으려 애를 쓰는 그녀의 웃는 눈동자가 약간 충혈이 되어 있었다. 몇 차례 헛기침으로 안정을 찾은 그녀가 말했다.

“미국식 유머를 정말 멋지게 구사했어요. 하하하.”

풍선을 가지고 놀 서너 살짜리 아기를 생각했는데, 나이가 스물세 살이라고 하며 반전을 일으켰다. 정신연령이 그 나이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철없는 대학생 룸메이트를 얘기한다는 걸 대학 교수이니 그녀가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녀가 미국식 유머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정의를 내리지도 않았고, 농담을 두고 미국식 유머에 해당되고 안 되고 그녀가 판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지만, 나이를 소재로 가벼운 반전을 만든 내 딴에는 꽤 멋지게 했다고 자화자찬하는 농담이다.

위의 내가 한 농담과는 다르게, 가슴 아프게 나이로 반전을 만든 시(詩)가 있다. 1893년생으로 시인, 평화운동가, 사회개혁가로 유명한 마거릿 포스트게이트 콜(Margaret Postgate Cole)이 일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16년 5월에 발표한 ‘The Veteran(참전용사)’이란 작품이다.

전투에서 눈을 잃은 상이군인이 햇볕을 쬐며 앉아 있다. 곧 해협을 건너 전쟁터로 가야 하는 신참 군인들이 그에게 와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구한다. 악몽과도 같은 자신의 경험을 무감각하게 전하던 상이군인이 아마도 여성들이었을 시인 일행이 옆에서 뭔가 떠드는 소리를 듣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Poor chaps, how'd they know what it's like? (딱한 녀석들이야. 실제는 어떠한지 알 수나 있겠어?)”

‘딱한 녀석들’이 그에게 경험담을 청한 신참 군인들인지, 전쟁터로 갈 일은 거의 없는 여성들을 두고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 두 부류가 하지 않은 것을 겪은 나이 든 선지자 같은 느낌을 담았다. 신병들이 떠나는 방향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시인의 일행 중 하나가 약간 용기를 내어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산전수전을 겪고, 온갖 풍상을 헤치고 나온 얘기를 하던 상이군인이 대답한다.

“이번 5월 3일이면 열아홉이 돼요.” 

마가렛 콜(좌), The Vertran
마거릿 콜(좌), "The Veteran" 

중국의 서부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간쑤성(甘肅省) 태생으로 최고 명문이라고 하는 베이징대학을 나온 중국인 동료가 있었다.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는데도 행동거지가 올바르고, 상식도 풍부하여, 어떻게 그리 성숙할 수 있냐고 감탄했더니 그가 쑥스러워하면서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소개해 주었다.

‘窮人的孩子早當家(가난한 집 아이가 일찍 철든다).’

문화대혁명 시기 인기 있던 소위 8대 혁명 경극 중의 하나인 <紅燈記(홍등기)>에 나오는 노래 중 한 토막이다. 스물다섯으로 이 말을 알려주던 중국인 친구의 얼굴과 열아홉으로 두 눈을 잃은 일차 대전 참전용사의 움푹 파여서 ‘socket’이라고 시인이 표현한 그 빈 자리가 겹쳤다. 너무 빨리 철들게 하고, 물들게 한 세월과 시간이 너무 혹독했다. 스물셋의 아기가 살 수 있는 세상은 꿈결에서나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미국식이라고 하는 유머에서나 쓸 수 있는 건가.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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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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