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껌을 무시하지 말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껌을 무시하지 말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8.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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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즈음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건물 앞에서 학생들이 우왕좌왕 웅성웅성하는 가운데 처음 만나는 듯한 두 남녀 학생이 살짝 호감 어린 눈빛을 교환한다. 사물함 앞에서 책을 떨어트리는 그 여학생에게 바로 다가가 도와주는 남학생이란 설정은 전형적이다. 여학생이 고마움의 표시로 껌을 주고, 껌을 입에 넣고 씹으면서 남학생의 눈은 여학생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둘은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시작하고, 어느 날 남학생이 차로 여학생의 집에까지 데려다준다. 헤어지는 순간의 아쉬움과 어색함에 여학생이 껌을 건네고 남학생은 껌을 받으며 둘은 가볍게 키스를 나눈다. 첫 키스인 듯싶다.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껌 포장을 벗겨 입으로는 껌을 씹으며 남학생은 껌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둘은 숲으로 피크닉도 다니고, 함께 공부도 하고, 겨울에는 눈을 맞으며 눈싸움 장난도 하고 즐거워한다. 여학생은 고향을 떠나 멀리 유학을 떠난다. 공항에서 작별하며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리고 중간중간 그랬던 것처럼 여학생은 껌을 주고 안타까운 얼굴로 껌 종이를 벗긴 남학생은 거기에 그림을 그린다.

세월이 지나 여학생이 돌아오고, 남자는 어느 건물로 그녀를 오라고 한다. 건물은 작은 갤러리였고, 남학생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처음 그들이 만났던 고등학교 사물함 앞에서부터 자동차에서의 첫 키스, 눈 오는 날의 장난 등 그들 사랑의 역사가 바로 여학생이 그때마다 주었던 껌 종이에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껌 종이에는 무릎 꿇고 여학생에게 반지를 바치며 프러포즈를 하는 남자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눈물을 글썽이며 여성이 고개를 돌리니 바로 남자가 프러포즈를 할 자세로 있었다. 껴안고 재회의 기쁨을 누리는 둘의 모습이 흐려지며 엑스트라(extra) 껌의 독특한 포장과 함께 슬로건이 나온다.

#give Extra GET extra

‘엑스트라를 주고, 엑스트라를 받으라.’라는 뜻인데, 알파벳 소문자와 대문자의 절묘한 배치로 행간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대문자로 나온 처음의 ‘Extra’는 껌 포장 그림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고유명사 브랜드로서 껌이니 대문자가 당연하다. 껌을 주는 건 그렇게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다. 가볍게 줄 수 있다. 영상에서도 처음에 껌은 어색함을 깨는 효과물로 쓰였다. 그래서 소문자로 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별것 아닌 것처럼 준 껌이 가져다주는 건 단어 그대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곧 ‘extra엑스트라’이다. 양적으로 더해지기도 하고, 그 이상으로 마음을 담은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철자 세 개를 모두 대문자로 써서 얻는 ‘GET’하는 크디큰 것이다.

아주 적은 액수나 하찮은 것을 가리킬 때 우리는 흔히 ‘껌값’의 비유를 쓴다. 별일 없을 때 ‘껌이나 씹어’라고 한다. 한국 최초의 경차인 티코가 부릉부릉 소리는 나는데 움직이지 않아서 보니 바퀴에 껌이 붙어 있더란 농담도 있었다. 껌을 씹으면 불량하게 보던 시절도 있었다. 2021년에 벌어진 도쿄 올림픽에서 어느 선수는 지고 있는데, 껌을 씹고 있더라며 몇몇 언론에서 질타받았다. 그러나 껌이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는 의학적(?) 소견이 나오고, 껌을 가지고 정신력을 연관시키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란 소리가 나오며 분기탱천한 기운은 좀 수그러들었다. 그 이전부터 치아 치료나 금연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등 여러 기능을 갖춘 무시 못 할 값을 자랑하는 껌들이 나왔다. ‘새라와 후안의 사랑 이야기(The Story of Sarah and Juan)’라는 엑스트라 껌 광고에서는 사랑을 강력하게 맺어 주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껌 종이는 사랑을 담은 캔버스가 된다. 이중섭 화가의 담배 은박지를 연상하게 만든다.

껌을 무시하지 말라. 깜 종이 함부로 버리지 말라. 당신은 어느 둘의 사랑을 그리 아름답게 연결해 준 적이 있는가. 예술을 위해 당신의 몸을 제공한 적이 있는가. 이런 반전 스토리의 소재가 된 적이 있는가.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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