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찾아가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찾아가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8.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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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처음 두 번의 게임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침대만 종횡으로 놓인 공간에 수용된다. 그 방에서 식사하다가 싸움이 벌어진다. 몇몇이 죽어 나가는데 주최 측에서는 시체만 치울 뿐, 별다른 제재가 없다. 자신이 살아남을 확률을 높일 기회라고 본 이들이 패거리를 지어서 다른 이들을 죽이려 하며 수용자 간에 전면 살육전의 기운이 감돈다. 이때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오영수 씨가 분한 할아버지가 천장에 거의 붙은 침대 꼭대기에 올라가 무섭다고 그만하라고 외친다.

“이러다간 다 죽어.”

할아버지의 호소가 통했는지 싸움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대략 봉합된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한 사람만 빼고는 모두 죽을 운명임을 원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한 사람마저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미래에 우리 인간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논할 때, 가장 확실한 건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 그런 사실을 회피하고 모르는 체하며,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려 애쓰고 부러 그렇게 행동하기도 한다.

염세적인 경향을 보이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하며 살았던 미국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조차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었기에)’라고 했다. 그러나 디킨슨의 작품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죽음이 작품 위에 등장해야 하는데, 작가는 그들을 위해 멈출 생각이 없다. 갈등이 예고되는 듯한데, 간단하게 주어를 상대로 바꾸며 해결해 버린다. 죽음이 시인에게 와서 점잖게 그를 마차 위로 타도록 이끌었다.

He kindly stopped for me.

디킨슨이 묘사한 인간과 죽음의 관계처럼 찾아가고 오는 행동 패턴의 반전에 기초한 마케팅 사례들이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과 서구에는 유통 혁명이 일어났다. 증기 기관을 활용한 배와 기차, 모스 부호로부터 시작한 유무선 통신, 우편 시스템으로 가능했던 카탈로그 판매 등은 기술 발전에 힘입었다. 유통점 내에서의 혁신은 행동 패턴의 변화에서 왔다. 이전에는 쇼퍼가 창구에서 주문하고 가게 주인이나 종업원이 물건을 꺼내 오는 방식이었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철망까지 있기도 한 카운터 뒤의 주인에게 사려는 물품을 얘기하면 주인이나 종업원이 카운터 뒤편의 선반에서 찾아다가 가져다주는 식이었다. 그걸 쇼퍼가 직접 살 물건들을 찾아가지고 와서 계산하게 바꾼 유통점들이 나타났다. 여기서 소개했던 영국 런던의 셀프리지 백화점에서는 한술 더 떠서 직접 체험해 보도록 권장했다. 그리고 여성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쇼핑하는데 거추장스러운 남자들을 위한 방을 따로 마련했다.

맥도날드에서 시작한 패스트푸드의 기본 시스템도 마찬가지이다. <파운더> 영화에서 잘 나타나고 설명하듯, 이전 많은 미국의 스낵 음식점들은 손님들이 차를 몰고 와서 주차장에서 주문하고 기다리면, 차 있는 곳으로 음식을 가져다주는 형식이었다. 그걸 맥도날드 형제들은 주문하고 바로 픽업해서 자기가 음식을 가지고 가서 먹는 것으로 움직임의 반전을 가지고 왔다. 한술 더 뜬 레이 크록은 손님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프랜차이즈 정책을 공격적으로 폈다.

맥도날드 첫번째 드라이브스루 매장 (출처 Fantastic Facts)
맥도날드 첫번째 드라이브스루 매장 (출처 Fantastic Facts)

찾아가야 하는 것을 ‘00이 내게로 왔다’라면서 찾아간다는 걸 강조한 프로그램들이 한국에서도 있다. 전기자동차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충전소의 부족이다. 현대자동차의 찾아가는 충전 서비스는 그런 구매 장애를 낮출 목적으로 나왔다. 차량을 친구로 비유하며, 방전으로 인한 멈춤을 이별의 순간으로 묘사하며, 코미디 분위기로 공포심을 완화하는 반전 효과를 노렸다.

이에 비하여 삼성화재는 1990년대 중반에 사고가 나고 영화 아바타와 같은 뾰족한 막대기 같은 절대고도 돌산 위에 얹힌 차량을 그려서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곳으로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라는 카피와 함께 삼성화재의 찾아가는 서비스가 출동한다. 고객에게 찾아가는 이전과 다른 반전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디지털의 위세가 강해질수록 이런 ‘찾아가는’ 아날로그 서비스가 빛을 발하고 증가할 것이다. 음식점으로 우리가 가지 않고, 이제 음식점이 우리에게 오고 있지 않은가. 그래야만 디지털이건 아날로그를 떠나 고객과 기업이 모두 살 수 있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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