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최고의 꿈을 연기한 사병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최고의 꿈을 연기한 사병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7.05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장병들이 확 바뀌는 게 보이더라구요. 제가 알던 말 안 듣고, 굼뜨게 행동하며 어떻게든 편한 것만 찾아서 도망치려던 장병들이 아니었어요.”

#반전의품격 책을 출간한 후에 만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처음 내 이름으로 책을 냈던 출판사의 대표인 선배가 책이 안 팔리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책은 얼마 팔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책 냈단 핑계로 사람들 만나고 인사하고 하는 게 중요한 거야."

그 선배의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책이 그동안 인사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손을 내밀거나 전화 연락하기 쑥스러운 분위기를 깨주는 역할을 하기 딱 좋은 핑계가 된다. 반대로 출간 소식을 듣고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네며, 책을 구입하고는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구실로 만날 약속을 만드는 이들도 꽤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못 봤다가 만난 인사에 지난 해 전역한 예비역 육군 소장이 있었다. 그가 육군 교육기관 중 하나의 교장을 맡고 있을 때, 강연을 가서 연을 맺은 후 문자만 가끔 주고받고 있었다가 책을 핑계로 만나기로 했다.

서울 강남 시내에 친지가 혼자 쓰던 사무실 공간의 반 이상을 그에게 내주어 사람들 만나고 글도 쓴다는 곳으로 갔다. 사무실을 들어서니 30대 초반의 한 여성과 얘기를 하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장군이 최전방의 사단장으로 근무할 때 ROTC로 갓 임관하여 예하 대대에서 정훈 장교를 맡고 있었던 인연으로 결혼 주례까지 섰던 현역 육군 대위였다. 그 대위는 현재 심리학 쪽 석사 과정 위탁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의 석사 논문의 주제가 피교육자나 조직의 하부 구성원들의 마음가짐과 행동이 바뀌는 계기였다. 그런 주제를 잡게 된 동기가 2015년 8월 휴전선에서의 ‘목함지뢰 사건’ 이후의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곧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 같던 문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보인 첫머리에 쓴 것 같은 장병들의 변화하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본인도 초임 장교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했지만, 갑자기 정예 병사로 변모한 장병들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면서 마음 놓였다며, 그 경험을 위와 같이 얘기했다. 당시 사단장이었던 장군이 받아서 자기 주변의 얘기를 덧붙였다.

“사단장을 맡으면서 장병들과 어울리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장병들 칭찬할 거리를 만들어서 사비로 1만 원씩 주기도 하고, 일부러 껴안고 격의 없이 함께 하려고 했어요. 목함지뢰 때 우리 사단의 초소(GOP)가 155마일 휴전선에서 북한군 초소와 대남방송 확성기에서 가장 가까웠어요.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포격을 하고 전쟁이 시작될 분위기였어요. 마지막이라고 얘기는 안했지만 가족들한테 편지를 쓰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벙커로 들어간 사단본부의 사병들이 ‘사단장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가겠다’라고 했다. 사단본부의 사병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했는데, 최전방 중대의 두 장병의 소식이 들려왔다.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던 주의 바로 다음 주에 전역을 하는 두 병사가 전역을 연기하겠다고 바로 위 지휘관에게 의사를 밝혔고, 그게 지휘체계를 따라 사단장에게까지 보고가 올라왔다.

어느 연재 만화에 나온 장면이다. 내무반에서 고참인 병장이 막내 신병에게 임무를 준다. 매일 아침 자신이 전역까지 며칠 남았는지 외치라는 것이다. “박00 병장님, 전역까지 98일 남았습니다”라고 외치자, 박00 병장이 외친 신병의 바로 한 달 위 고참이 이병에게 ‘아고, 너는 앞으로 며칠이나 남았냐?”라고 놀리자, 신병이 바로 답한다. “이00 이병님, 전역까지 899일 남았습니다.” 그만큼 사병들은 전역 하나를 바라보고 사는데, 그런 전역을 자진 연기 신청 했다. 그것도 목숨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위기 와중에 말이다. 그 두 병사의 전역 연기 신청이 알려지면서 다른 사단까지 수십 명의 사병들이 같은 연기를 신청했다.

당시 대통령까지 두 병사를 언급하면서, 전국에 큰 화제가 되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책임감이 없다고 신세대 장병들을 매도하다시피 하던 언론에서 ‘안보 신세대’란 명칭까지 붙여서 그들을 의인으로 치켜세웠다. 긴박했던 상황을 그려주며 두 병사의 기존 상식과 반하고,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전역 자진 연기 신청을 말했던 당시 사단장은 이례적이라고 할만큼 북한이 ‘유감 표명’을 하면서 사태를 마무리한 원인 중 하나로 전역 연기를 대표로 발현된 대한민국 병사들의 투지와 전의를 들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온 다른 이유도 많이 있었겠고, 그들의 행위를 두고 비꼬는 소리도 꽤 있었다. 그러나 두 사병으로서는 목숨을 건, 진정성이 담긴 반전의 결정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 목함지뢰 사건 : 2015년 8월 4일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함지뢰를 육군 1사단의 수색부대원이 밟아 두 명이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등 중상을 당했다. 이후 휴전선 일대에서 남북 긴장관계가 전쟁 일보 직전까지 고조되었던 일련의 사태를 일컫는다.

[2] 내무반 : 사병들의 거처인 ‘내무반’은 옛날 용어가 되었다. 2005년 이후로 ‘생활관’이라고 주로 불린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