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넘어서는 치유하는 '산파'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넘어서는 치유하는 '산파'입니다

  • 진용주
  • 승인 2022.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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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파(産婆)는 산모의 고통을 본인도 함께 겪어 내는 동반자

몽골 노인과 암소의 출산을 보면서

일전에 TV에서 몽골 유목민과 가축이 함께 살아가는 EBS-TV 다큐멘터리(EBS 다큐프라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농사나 제조를 하지 않는 몽골 유목민에게 [말, 소, 낙타, 양, 염소] 등의 가축은 유일한 재산이며, 그들 삶의 전부입니다. 몽골인에게 가축은 또 다른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당시의 TV 장면은 눈 덮인 설원에서 수많은 가축무리를 이끌고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몽골 유목민 가족이었습니다. 그때 가축 중에서 출산이 임박한 암소가 자궁 밖으로 둥근 막이 일부 나온 상태에서 힘을 쓰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암소는 길고 긴 설원을 걷고 이동하느라 지쳤는지, 한참을 힘쓰다 결국은 출산을 포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나이가 지긋한 몽골 노인이 암소의 곁으로 와서 소의 배 부위부터 생식기 부근까지 한참 동안 이곳저곳을 천천히 문지르며 암소가 기운 차리기를 기다립니다. 얼마 후 암소가 다시 출산하려고 힘을 주어 애를 쓰기 시작하자, 노인이 몸 밖으로 조금 나온 새끼 소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노인은 소가 힘주는 때를 기다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새끼를 빼내기 시작합니다. 결국 새끼 소는 어미 소의 몸 밖으로 완전히 나왔습니다. 이번에 몽골 노인은 빠른 속도로 새끼 소의 몸 밖을 감싸고 있는 하얀 막을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미 소의 몸으로부터 함께 싸여져 나온 자궁의 막을 새끼 소에게서 뜯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이 늦으면 숨쉬지 못하여 태어나자마자 질식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성우의 해설이 나옵니다. 이와 동시에 몽골 노인은 자신의 입으로 새끼 소가 깨어날 때까지 눈귀와 입가에다 후후하며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새끼 소가 깨어나자 어미 소가 다가가 새끼 소의 얼굴을 핥아줍니다. 그 순간 어미 소의 고통과 두려운 표정은 사라지고 평온한 얼굴이 클로즈업됩니다. 추운 몽골의 설원에서 새 생명이 온전히 탄생한 것입니다. 몽골 노인이 안도의 밝은 표정으로 어미 소와 새 생명을 바라봅니다. 몽골 노인은 숙련된 산파(産婆)였습니다(EBS 다큐프라임, 가축 제 4부, 아주 오래된 동행).

출처 : EBS 다큐프라임 '가축'
출처 : EBS 다큐프라임 '가축'

산파는 두 생명을 살리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기록에 의하면, 산파(産婆)는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순산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고출산 후 탯줄을 자르는 등 해산의 전 과정을 돕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산모가 출산하는 날이 다가오면 미리 산파역을 맡을 사람을 결정해 놓았다고 합니다. 산파는 전통적으로 출산의 경험이 많은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주로 맡았습니다. 비록 오늘날과 같은 전문성을 갖추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가족 단위에서 서로 돕고 협력하였습니다. 가족 중에서 산파를 구할 수 없을 때는 친척이나 마을에서 다산 경험자를 모시기도 하였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산파역을 맡을 사람이 없을 경우는 무당이 산파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급한 경우에는 삼신이 도와주어야 새 생명이 온전히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산파로 결정되면 매사를 깨끗이 가려서 행동해야 합니다. 자기의 딸이 출산하더라도 가지 않았으며 한 달에는 아이를 두 번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한다는 차원입니다. 산파가 산모의 출산을 위해 지키는 금기 사항은 아이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경건함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심하고 배려 깊은 전통과 다르게, 오늘날에는 서구 의학 기술의 유입과 발달로 산파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현대적 의료법이 도입된 뒤인 1914년에 제정된 ‘산파규칙’에는 전통적으로 산모를 구원하던 사람의 이름을 산파(産婆)라 부르게 했습니다. 산파는 1952년 의료법 개정으로 조산원(助産員)이 되고, 1987년 다시 법이 개정되어 조산사(助産師)가 되었습니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산파’ 중에서).

출처 : 중세의 산파(https://www.cambridge.org)
출처 : 중세의 산파(https://www.cambridge.org)

역사적으로 살펴본 산파의 역할

산파, 혹은 조산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는 미드와이프(midwife)입니다. 미드와이프(midwife)의 접두어 미드(mid)는 함께(with)라는 뜻이고, 어느 단어와 함께 사용되는 접미어 와이프(wife)는 여성이라는 뜻입니다. 미드와이프(midwife)는 ‘여성의 손에 맡겨져 있는(with woman)’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성은 산모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역사적으로 한 사람 이상의 여성이 존재했던 그 순간부터 여성들은 끊임없이 다른 여성의 출산과 분만의 전체 과정을 돕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산파의 역할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몇몇 구절에서도 산파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출애굽기에서 이집트 왕의 잔인무도한 정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히브리 여인을 위해 조산할 때에 남아가 출생하면 죽이고, 여아가 출생하면 살게 두라”고 엄명하였습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산파가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습니다. 16세기의 파리에서는 산파들이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했을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20세기 전후까지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와 그 후대의 산파들은 의학 교과서나 의학 교육, 혹은 제대로 된 장비를 접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1765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윌리엄 쉬픈(William Shippen) 박사가 최초의 산파교육과정을 열었는데, 당시에 교육 과정에 대한 호응은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많은 산파들이 분만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과정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헝가리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이그나즈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s) 박사는 수술 전의 스크러빙(scrubbing), 즉 수술에 임하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임산부를 검진하기 전에 멸균 효과가 있는 염소 용액으로 손을 씻게 했습니다. 제멜바이스의 간단한 위생관리 체계는 18퍼센트에 달했던 분만 치사율을 1퍼센트로 대폭 감소시켰습니다. 그의 이론은 사망 1년후 파스퇴르의 질병증명에 의해서 빛을 보게 되었으며, 그는 현대 소독법의 창시자이자 선구자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헝가리 정부는 바이스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1969년 부다페스트 의대의 이름을 제멜바이스 의대로  변경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정부도 그의 동상을 세우고, 2008년에는 그를 기념하는 50유로짜리 금화를 발행합니다. 유네스코는 부다페스트에서 그가 1861년 쓴 '산욕열의 원인, 개념치료' 논문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합니다. 지금은 호주의 시드니 대학과 미국의 시카고에 있는 일리노이 대학에서 ‘간호학 및 산파학’(Nursing & Midwife)이라는 학과를 개설하여 가르치고 있으며 전문학위를 주고 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의학 교육이 발전했고, 위생학과 질병 예방 분야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짐에 따라 자격을 갖춘 의사들이 더 존경받고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파는 과학발전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물론 산파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출산과 분만 시에 이루어진 많은 ‘전통적인(old-fashioned)’ 관행에 대한 산파의 경험과 지식은 과학 기술의 그늘에 가려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산모에게 진통이 시작되면 반듯이 누워 있는 대신에 앉거나 서게 하고, 혹은 몸을 구부리게 하는 것과 같은 전통적인 관행을 아무도 더 이상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20세기 말이라 할 수 있는 1970년대까지는 제왕절개수술(caesarean section), 태아 상태에 대한 직접 모니터링, 무통분만의 반 마취 상태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에 이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여성들은 다시 산파를 찾았고, 이에 새롭게 공인된 교육 과정을 갖춘 단체들이 산파들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다음백과, ‘산파’ 중에서).

출처 :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박사 (https://owlcation.com)
출처 : 이그나즈 제멜바이스 박사 (https://owlcation.com)

명칭으로 살펴보는 국내 산파들의 역할과 방법

산파는 그들이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하지만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양했습니다. 명칭을 통해 각 지방에서 귀한 존재였던 산파의 역할이나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라남도 강진에서는 산파를 ‘삼할머니’라 불렀습니다. 보통 산파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시어머니 혹은 친정 어머니인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마을이나 주변에서 아이를 잘 받는 사람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산파는 해산 날짜가 되면 산실(産室)에 짚을 깔고 물을 끓여 해산 준비를 하고 산모가 힘 조절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산모의 해산이 끝나면 산파는 아이의 출생 시간을 확인해 산모에게 알려주었는데, 시계가 없었을 당시에는 해나 달, 별이 뜬 정도를 보아서 시각을 짐작해 알려주었습니다.

충청남도 공주에서는 산모의 해산을 돕는 것을 ‘해막간’이라고 했습니다. 친정에서 아이를 낳으면 친정어머니가 ‘해막간’을 해 주고, 시가(媤家)에서 아이를 낳으면 시어머니가 대신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시누이나 올케 혹은 남편이 하기도 했습니다. 충청북도 충주에서는 산파가 일 년에 한 아이만 받는 것이 좋다고 믿었습니다. 만일 산파가 두 명의 아이를 받으면 삼신이 다투어 아이에게 해(害)를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문적으로 아이만 받는 산파의 경우에는 같은 달에 짝수로는 아이를 아예 받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후산(後産)의 모든 과정이 끝난 후에도 산파는 산가(産家)에 머물면서 산모의 몸조리를 도왔습니다.

경상남도 김해에서도 산파는 시어머니가 주로 맡았는데, 아이를 받은 경험이 없으면 큰 숙모, 동서, 이웃 사람이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자식을 많이 낳고 어려움 없이 아이를 낳은 사람이 있는 경우에 그를 따로 불러 아이의 출산을 부탁하였습니다. 경상남도 거창에서는 산모에게 산기가 들면 시어머니나 동서들이 함께 산바라지를 해주었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에서도 산모를 도와주는 일은 집안의 여자 어른인 시어머니나 동서가 맡았는데, 산모가 난산(難産)으로 힘들어하지 않는 한 특별히 산파를 두는 일은 드물었다고 합니다. 간혹 산파의 역할을 마을에서 아이를 쉽게 낳았던 사람이나 점치는 사람이 맡기도 했습니다. 점치는 이는 산모가 아이를 낳을 시기가 되면 산실에 제왕판 삼신상을 차려 놓고 비손하면서 아이를 받았습니다.

강원도 강릉에서는 여느 지역과 비슷하게 임신부의 산바라지는 임신부의 가족 중 여자 구성원이 했습니다. 시댁에서 아이를 낳으면, 시어머니나 시누이, 시고모, 시동서 등이 산바라지를 하는데 친정에서 아이를 낳으면 친정어머니나 올케가 산바라지를 했습니다. 더러 아이 출산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아이를 낳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횡성에서는 산파를 ‘산관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출산은 주로 산모와 가족끼리 치르는데, 만약 난산(難産)일 때에는 마을에서 출산 경험이 풍부한 여자 어른을 청해 부탁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을 ‘아기할망’, ‘삼승할망’, ‘아기네 우레뎅기는 할망’, ‘아기 네와주는 할망’ 등으로 불렀는데, 모두 아기를 낳게 해주는 할머니라는 뜻입니다. 아기할망은 이른바 아기의 출산과 양육에 신력(神力)이 있다고 인정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아기할망이 배를 쓸어주면 통증이 완화된다고도 했으며, 간혹 아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무속의례를 행하기도 했습니다. 제주 동남부 지역에서는 산파를 마을에서 ‘유식한 할망’, ‘아기할머니’, ‘애기할망’이라 부르는데, 해산이 다가오면 가족들은 큰 솥에 물을 가득 넣고 끓이면서 산파를 모시러 갔습니다. 산모가 쉽게 아기를 분만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애기할망’의 지시에 따라 가족들은 집의 모든 문과 궤의 문, 솥뚜껑 심지어 물 항아리 뚜껑까지 열어놓았습니다. 제주 동북부 지역에서는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마을에 ‘삼승할망’, ‘삼신할머니’라 불리는 무녀가 해산을 도왔다고 합니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산파’ 중에서).

출처 : 한국근대사박물관의 조산원 간판(https://news.korean.go.kr)
출처 : 한국근대사박물관의 조산원 간판(https://news.korean.go.kr)

한국에서 매년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

중국에서 매년 10월 10일은 쌍십절(雙十節)이라고 불리는 국가기념일 중 하나이며, 정부가 주최하는 축하 행사가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는 화교들이 주최하는 축하 행렬들이 매년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매년 10월 10일이 임산부의 날로 지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임산부의 날에는 차여성병원 등 많은 산부인과 병원들, 기저귀를 비롯한 유아용품 기업들이 각종 큰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10월 10일은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는 10월과 임신 기간 10개월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임산부를 배려, 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2005년 12월 7일 개정된 ‘모자보건법’에 근거하여 제정되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축복이지만 여성에는 적잖은 부담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2017년에 북한 임산부들의 출산을 도우려는 UN기구의 계획도 있었습니다. VOA(미국의 소리; Voice of America) 방송에 의하면, 유엔인구기금(UNFPA)은 북한 보건성과 교육위원회 등과 협력해 450만여 명의 북한 가임 여성에게 생식보건 정보를 제공하고, 피임약 등 가족계획용품을 지원할 계획이며, 여성들의 출산에 필요한 기초 의료용품 (midwifery kit)과 필수 의약품 등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아울러 북한 교육위원회와 함께 북한 대학에 임산부의 출산을 돕는 '산파학'(산부인과학) 과정을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하였습니다(연합뉴스, 2017.07.15).

출산 과정에는 산고와 아울러 예기치 않은 산모와 아기의 사망 사고도 있습니다. 의학이 발달한 요즘에 누가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느냐고 믿을 수 없다는 어투로 말들을 하겠지만, 아직도 국내에서는 연간 수십 명의 임산부가 임신 또는 분만과 관련한 질환으로 사망합니다. 통계청이 집계한 기준으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임신 또는 분만과 관련하여 사망한 모성 사망자 수는 연평균 49.8명입니다. 기간별로 살펴보면 2009년 60명, 2010년 74명, 2011년 81명, 2012년 48명, 2013년 50명, 2014년 48명, 2015년 38명, 2016년 34명, 2017년 28명, 2018년 37명 등입니다. 출생아 10만 명당 사망하는 임산부를 뜻하는 모성 사망비도 2018년 기준 11.3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산부의 주요 사망 원인은 산후 출혈입니다. 산후 출혈은 아기를 낳은 후 발생하는 것으로, 분만과는 별개로 24시간 이내에 출혈량이 500㎖ 이상일 경우를 지칭합니다. 대용량 산모용 패드 2개가 다 젖을 정도의 많은 양입니다(연합뉴스, 2020.10.08).

출처 : 통계청이 집계한 모성사망자 수 및 모성사망비(2009-2018). 2020.10.10.
출처 : 통계청이 집계한 모성사망자 수 및 모성사망비(2009-2018). 2020.10.10.

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넘어서는 치유하는 '산파'입니다.

필자는 한때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그리고 지금은 격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병원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발생한 좌골신경통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한의원에 다녔습니다. 평소 습관적으로 지내는 앉는 자세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통증 치료를 위해 진료받으러 다녔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통증 치료와 관계없이 지난 두 주간 생겼던 일상의 일을 주제로 짧은 상담(대화)을 하였습니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서로가 일상의 안부와 관심사를 나누는 이웃과 같은 관계로 발전하였습니다.

병원에 방문하여 의사 선생님과 만날 때마다 대화는 늘 제가 먼저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두 주간 겪었던 일상생활 이야기, 읽었던 책 내용, TV 드라마,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감동 장면 등에서 하나를 꺼내 얘기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늘 제가 말하는 내용에 대하여 무심코 들으면서, 본인의 경험이나 생각을 담백하게 얘기합니다. 그리고 끝 무렵에 늘 비슷한 대화를 합니다. ‘의사통증은 어떠세요환자아주 아픈 것도 아니고안 아픈 것도 아닌 그대로예요그리고 늘 똑같이 운동해요의사지금처럼 꾸준히 운동하면서 더 나빠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세요.’ 이런 정답이지만 특별한 것이 없는 마무리 대화가 끝나면, 늘 똑같이 침상으로 이동하여 침을 맞습니다. 그것으로 진료는 끝납니다.

몸의 통증 치료보다는 믿는 사람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나의 일상생활과 생각을 들어주는 온전한 ‘경청자’였습니다.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에서 만난 인연이지만, 이 세상에서 나의 이야기를 이처럼 진지하고 관심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느 순간부터 의사 선생님이 나의 일상으로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말하는 한마디 한 마디, 심지어 푸념조차도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모두 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성도들은 매일 하나님께 모든 고민과 기쁨과 슬픈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이러한 하소연과 바램을 종교적으로는 기도라고 합니다. 당시에 나는 격주의 목요일이 가까워지면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기대되었습니다. 산파(産婆)가 산모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조력자이듯이의사 선생님 역시 저의 일상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조력자이었습니다고통은 나누고 위안을 주는 정신적 산파(産婆)이었습니다. 갈수록 형식적이 되고 전문 기능화 되어가는 요즘 병원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의사의 역할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참고문헌] 

  • 권수영(2020), 치유하는 인간, EBS BOOKS.
  • 국립문화재연구소(2009~2011), 한국인의 일생의례.
  • 다음백과, 산파.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2XXXXX00370
  • 연합뉴스, 10년간 연평균 49.8명 아이 낳다 사망…출산 후 출혈 주의(2020.10.10.).
  • https://www.yna.co.kr/view/AKR20201008185600017
  • 최인학 외(2001), 한국민속학 새로 읽기, 민속원.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산파.
  •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209
  • EBS 다큐프라임, Docuprime 가축 4부- 다큐영화, 아주 오래된 동행.
  • https://www.youtube.com/watch?v=kh8KMVE-QKE

※ 닥스미디어(http://docsmedia.co.kr/) 칼럼을 공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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