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병원은 겸손과 진심에서 비롯된다.

최고의 병원은 겸손과 진심에서 비롯된다.

  • 이하나
  • 승인 2022.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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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는 병원에서 발생하는 최악의 위기 상황 중 하나입니다. 모든 의사는 이 위기를 최대한 피하고 싶어하고, 절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원치 않던 위기와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이 때, 우리의 병원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의료사고라는 위기를 원만히 이겨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의료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바로 ‘환자’가 입게 됩니다. 그 피해가 크던 작던, 결국 의사는 환자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 장본인이 됩니다. 물론 당연히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료사고가 종종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실제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2020)의 조사에 따르면, 상급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개인 병의〮원에서 발생하는 의료분쟁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의료사고 후 병원이 위기를 속히 해결하지 못하고 환자와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피해를 입은 환자와 가족들을 외면한 채, 사고를 수습하고 병원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행동이 과연 최선의 위기관리 방법일까요?

의료사고의 잘못된 대응방법 사례_이대 목동병원

2017년 12월 16일,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환아 4명이 80분 동안 순차적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전례 없던 충격적인 위기상황에 의료진 및 유가족들은 물론 국민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위기발생 직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질병관리본부는 정확한 사망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지만 뚜렷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장은 기자 브리핑을 열어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며 사고 원인 규명 및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위 기자회견 이후 병원 측을 향해 더욱 분노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닌, 보여주기 방식의 언론 대응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병원측은 기자 브리핑 계획을 유가족들에게 사전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어진 병원의 행보는 위기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없음을 밝히는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고 통렬한 반성을 한다’ 라는 고개 숙인 사과문은 사고 발생 4개월이 지난 후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의료진 무죄로 일단락됐지만,
이대 목동병원의 명성과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던 병원 위기관리의 문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이대목동병원 https://mokdong.eumc.ac.kr/main.do
출처 :이대목동병원 https://mokdong.eumc.ac.kr/main.do

의료사고의 현명한 대응방법 사례_듀크 대학병원(Duke University Medical Center)

2003년 2월 7일, 제한 심근병(restrictive cardiomyopathy)을 앓던 17세 제시카 샌틸란(Jesica Santillan)은 미국 듀크 대학병원(Duke University Medical Center)에서 간절히 기다리던 심장 폐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수술 도중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제시카의 혈액형은 O형인데, 기증된 장기의 혈액형은 A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혈액형 불일치로 인한 합병증으로 제시카는 혼수상태가 되었습니다. 며칠 후 제시카는 다시 자신의 심장과 폐를 이식받는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제시카는 첫 이식수술을 받은 지 15일이 지난 2월 22일, 결국 뇌사 판정을 받고 말았습니다. 

미국 최고의 의료센터에서 혈액형 불일치로 수술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 사건은 미국 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볼 점은 이식수술을 담당했던 제임스 제거 박사(Dr. James Jaggers)의 행동입니다. 그는 제시카가 뇌사 판정을 받은 당일 언론에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사과문의 첫 문장은 제시카의 죽음을 애도하고, 상실의 슬픔에 잠겨 있을 가족에 대한 미안함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실 그는 제시카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집도의 입장에서 이식된 장기의 혈액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사실 규명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모든 의료진을 대표해 제시카를 잃게 된 죄송스러운 마음과 이러한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반성하였습니다. 듀크 대학병원의 위 사례는 의료사고를 대하는 병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출처 : 듀크 대학병원 https://corporate.dukehealth.org/news/three-duke-health-hospitals-again-receive-top-letter-grade-safety-0

의료사고와 같은 위기상황, 가장 먼저 할 일은 진심 어린 사과

의료사고와 같이 피해자가 발생한 위기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피해 환자를 향한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송과 그의 동료들(Song, Choi, Kim, Kim, & Moon, 2016)은 의료과실에 대한 대응 전략의 효과를 검증하는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병원의 직접적인 책임성이 높은 ‘의료진 과실’과 직접적인 책임성이 낮은 ‘장비 결함’이라는 두 가지 의료사고 시나리오를 준비한 후, 1)책임 부인하기, 2)환자의 환심사기, 3)사과하기, 4)환심사기와 사과하기 중 환자의 입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감언이설이 함께한 전략들보다 사과를 표현했을 때가 환자의 만족도와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 등에 있어 모두 가장 높은 점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진실한 사과는 피해자의 분노를 가라 앉힐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Anderson, Linden, & Habra, 2006). 의료사고라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최고의 법률팀을 꾸리는 것이 아닌, 과오를 인정하고환자와 보호자에게 귀를 기울이며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지금까지 의료사고를 대하는 데 있어 너무 ‘병원과 의사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돌아 봐야할 시점입니다. 향후 의료사고에 대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환자를 중심에 두고 고도화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2020). 2020년도 의료분쟁 조정중재 통계연보. Retrieved from https://www.kmedi.or.kr/lay1/bbs/S1T27C96/A/25/view.do?article_seq=6401&cpage=&rows=&condition=&keyword=
  • Anderson, J. C., Linden, W., & Habra, M. E. (2006). Influence of apologies and trait hostility on recovery from anger. Journal of Behavioral Medicine, 29(4), 347-358.
  • Boyer, A. R. (2009). In a" Sorry" State: The Ethics of Institutional Apologies in Response to Medical Error (Doctoral dissertation, University of Pittsburgh).
  • Song, D. J., Choi, J. W., Kim, K., Kim, M. S., & Moon, J. M. (2016). Quasi-experiment study on effectiveness evaluation of health communication strategies.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31(7), 1027.

※ 닥스미디어(http://docsmedia.co.kr/) 칼럼을 공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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